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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고려 무신정변 — 1170년, 무신들이 칼을 빼든 날

by 정보정보열매 2026.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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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년 고려, 한 연회 자리에서 칼이 뽑혔습니다. 그날 이후 고려는 100년 가까이 무신들의 나라가 됩니다. 역사는 이를 '무신정변'이라 부릅니다.

무신정변의 배경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문벌 귀족 중심의 문신(文臣) 우위 사회였습니다. 과거 시험을 통해 입신하는 문신들이 관직과 토지를 독점했고, 군인 출신 무신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문신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의종(재위 1146~1170)은 연회와 놀이를 즐기며 무신들을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무신들의 오랜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습니다.

거사의 발단

1170년 8월, 의종이 개경 근처 보현원으로 행차하던 중 오문(五門) 앞에서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젊은 문신 한뢰가 나이 든 대장군 이소응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희롱했습니다.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들이 그날 밤 칼을 들었습니다.

거사와 의종 폐위

무신들은 의종을 수행하던 문신들을 대거 살해하고, 개경으로 들어와 왕족·문신 세력을 숙청했습니다. 의종은 폐위되어 거제도로 귀양 갔고, 의종의 아우 명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왕은 실권 없는 허수아비가 됩니다.

무신 집권기 100년

이후 고려는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 순으로 권력이 이동하며 무신 집권기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최충헌 이후 최씨 4대(최충헌→최우→최항→최의)가 62년간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무신 정권은 1270년 원나라의 압력과 무신 집권자 임연의 사망 이후 왕정이 복구되며 막을 내렸습니다.

무신정변은 구조적 차별에 대한 폭력적 반응이었습니다. 100년 권력의 시작은 한 연회에서 쌓인 굴욕 때문이었습니다.

※ 무신정변 관련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상세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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