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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전

쇄국정책 매니아 흥선대원군, 왕족 망나니에서 개혁 군주로, 흥선대원군의 두 얼굴.txt

by 정보정보열매 2025.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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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망나니에서 개혁 군주로, 흥선대원군의 두 얼굴.txt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척화비를 세우며 굳게 문을 걸어 잠갔던 남자. 조선의 마지막 불꽃, 흥선대원군 이하응. 어떤 이는 그를 부패한 나라를 바로잡은 위대한 개혁가라 하고, 어떤 이는 시대의 흐름을 막아선 고집불통 쇄국주의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잡기 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왕족 망나니'로 위장했던 남자였죠. 🎭


흥선대원군

1. '상갓집 개'라 불리던 시절: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연기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19세기 중반 조선은 안동 김씨 일가가 나라를 주무르던 '세도정치'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 왕족으로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똑똑하고 야심 있어 보이는 왕족은 역모 누명을 쓰고 죽어나가기 일쑤였죠.

살아남기 위해 이하응이 택한 방법은 '파락호(破落戶)', 즉 '집안 말아먹는 망나니'로 행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싸움을 하고, 양반들 잔칫집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며 돈을 뜯었습니다. '궁도령(궁궐의 거지)', '상갓집 개'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었죠. 모두가 그를 한심하게 여기며 비웃는 동안, 그는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안동 김씨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몰래 조대비와 손을 잡고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다음 왕으로 만들기 위한 눈물겨운 위장술이었습니다.


2. 10년의 섭정: 썩어빠진 조선을 향한 '대원군표 철퇴'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그의 계획은 성공합니다. 아들 명복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고종)이 되고, 이하응은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 대원군으로서 섭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겪었던 울분을 '개혁'이라는 철퇴로 터뜨리기 시작했죠.

  • 세도정치 박살: 나라의 암덩어리였던 안동 김씨 세력을 정계에서 쓸어버렸습니다.
  • 서원 철폐: 양반들의 특권과 부패의 온상이자, 국가 재정을 좀먹던 전국의 서원(書院)을 47개소만 남기고 모조리 철폐했습니다. "공자가 다시 살아나도 용서치 않겠다"는 그의 말에 전국의 유생들이 들고일어났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 양반도 세금 납부: "백성의 고혈을 짜는 자는 내 아들이라도 용서치 않겠다"며,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걷는 '호포법'을 실시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국가 재정을 채우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분명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이 철퇴는 나라 안의 적에게만 향했을 뿐, 나라 밖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서양 세력을 '오랑캐'로 규정하고 천주교도를 박해했으며, 프랑스(병인양요)와 미국(신미양요)의 침략을 막아낸 것을 '승리'로 여기고 쇄국의 빗장을 더욱 굳게 걸어 잠갔습니다.


3. 며느리와의 골육상쟁: 권력을 놓지 못한 노인

10년의 섭정이 끝나고 아들 고종은 스물두 살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죠.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다 잡은 권력을 아들에게조차 넘겨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권력을 되찾으려는 고종과 며느리 명성황후 vs 권력을 지키려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집안싸움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건 골육상쟁이었습니다.

강제로 은퇴당한 그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임오군란 때는 반란군을 등에 업고 잠시 재집권하기도 했고, 갑오농민전쟁 때는 동학 세력과, 을미사변 때는 일본과 손을 잡는 등 재기를 위해 적과도 손을 잡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의 명예를 깎아내렸습니다.


결론: 위대한 개혁가인가, 시대의 흐름을 막은 쇄국주의자인가

흥선대원군은 한국사에서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분명 썩어빠진 나라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과감하게 환부를 도려낸 위대한 개혁가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눈과 귀를 막고 나라를 고립시킨 완고한 쇄국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세기의 문제점을 18세기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내부의 적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부의 변화를 읽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조선을 세도정치의 위기에서는 구해냈지만, 제국주의라는 더 큰 파도로부터는 구해내지 못한, 너무 늦게 권력을 잡은 비운의 영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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