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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전

개그맨들의 영원한 아이디어 뱅크, 전유성이 남기고 간 것들.txt

by 정보정보열매 202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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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들의 영원한 아이디어 뱅크, 전유성이 남기고 간 것들.txt

 

2025년 9월 25일,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아이디어 뱅크', '개그맨들의 스승'이라 불렸던 전유성 님이 향년 76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TV에 매일 나오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코미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개그콘서트'의 기틀을 닦았으며, 수많은 스타를 발굴했던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를 추모합니다. 🙏


젊은시절 전유성

1. '개그맨', '개그콘서트'… 그가 없었다면 없었을 것들

전유성의 가장 큰 업적은 대한민국 코미디의 판을 새로 짰다는 점입니다.

  • '개그맨'이라는 단어의 창시자: 당시 코미디언이라는 말 대신, 그는 '개그맨'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밀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선배들의 핀잔 속에서도 그의 고집은 결국 표준이 되었습니다. 직업의 이름 자체를 바꾼 것이죠.
  • '개그콘서트'의 아버지: 1990년대 말, 대학로 소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스탠딩 개그 공연의 가능성을 보고 이를 방송으로 끌어온 장본인이 바로 전유성입니다. 이 실험적인 시도가 바로 20년간 대한민국을 웃겼던 전설적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시작이었습니다.
  • '슬로우 개그'의 선구자: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툭 던지는 한마디, 한 번 더 생각해야 터지는 지적인 '말개그'를 선보였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안 웃긴다"는 오해도 받았지만, 이는 후배 개그맨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 그의 손을 거치면 스타가 됐다 (이문세부터 한채영까지)

그는 '스타 제조기'였습니다. 그의 비범한 안목은 개그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미쳤습니다.

  • 가요계의 거물을 발굴하다: 무명 가수였던 이문세주병진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발굴했으며, 13살 소년 김현식의 노래를 듣고 "너는 가수를 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미녀 스타들의 은인: 방송국 로비에 있던 팽현숙을 보고 "코미디에는 예쁜 역할도 필요하다"며 최양락을 시켜 코미디언 시험을 보게 했고, 인사동 자기 가게에 손님으로 온 한채영을 보고 데뷔시킨 일화는 전설적입니다.
  • 후배 개그맨들의 스승: 신봉선, 김신영, 조세호, 황현희 등 수많은 개그맨들이 그의 '코미디 시장' 극단을 거쳐 갔습니다. SM 이수만은 슈퍼주니어의 희철, 이특, 신동을 그에게 보내 예능 특훈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될 놈을 뽑는 게 아니라, 선착순으로 뽑아 키운다"며 겸손해했지만, 그의 손을 거친 수많은 이들이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


3. '폭력은 내 선에서 끝낸다', 똥군기 없앤 진짜 선배

1980년대 개그계는 위계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똥군기'로 악명 높았습니다. 전유성 역시 슬랩스틱을 안 하고 말로만 웃긴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온갖 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더러운 폭력은 내 선에서 끝낸다"는 신념으로, 후배들에게는 일절 손을 대거나 군기를 잡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맞는 게 당연하던' 시절, 그의 이런 태도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심어주었고, 그가 개그계의 '영원한 스승'으로 불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괴짜이자 아이디어맨으로

그는 말년에도 평범함을 거부했습니다. 경북 청도와 전북 남원에 내려가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 극장을 짓고, '개나소나 콘서트'를 여는 등 세상을 향한 유쾌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제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그가 남긴 웃음과 아이디어, 그리고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괴짜, 남의 길을 가지 않았던 자유인, 그리고 후배들의 영원한 아이디어 뱅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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