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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과거시험 커닝, 상상 이상으로 치열했다

by 정보정보열매 2026.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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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청렴하고 곧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시죠? 사실 과거시험장에서는 지금 수능보다 더한 부정행위가 판을 쳤습니다. 대리시험, 컨닝페이퍼, 시험관 매수까지. 요즘 뉴스에 나오는 입시비리가 새삼스러울 게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어두운 뒷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과거시험이 왜 그렇게 중요했나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지만, 과거시험은 신분 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양반 집안이라도 대대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몰락했고, 반대로 합격하면 집안 전체가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과거시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의 명운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경쟁률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한 번 시험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응시했는데, 급제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장난 아니라고 하지만, 조선시대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거죠.

 

협서, 조선판 컨닝페이퍼

 

가장 흔한 부정행위는 협서였습니다. 협서는 글자 그대로 몸에 숨겨 가지고 들어간 책이나 종이를 말합니다. 사서삼경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서 옷 속에 숨기거나, 부채 안쪽에 적어 넣거나, 심지어 속옷에 글씨를 써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록에 보면 협서 적발 기록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영조 때는 한 응시자의 옷에서 책 수십 권 분량의 협서가 나와서 난리가 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옷을 겹겹이 입고 그 사이마다 종이를 숨겨왔던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족보를 프린트해서 온몸에 붙이고 간 셈이죠.

 

대리시험, 거벽의 등장

 

대리시험도 성행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걸 거벽이라고 불렀습니다. 돈 많은 집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시험을 보게 하는 겁니다. 본인 확인 절차가 지금처럼 철저하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거벽은 전문직이었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신분이 낮아서 과거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봐주었습니다. 단가도 있었는데, 합격하면 거액의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지하경제가 형성되어 있었던 거죠.

 

시험관 매수와 청탁

 

권력 있는 집안에서는 아예 시험관을 매수하거나 청탁을 넣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익명으로 채점했는데, 이걸 피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답안지에 미리 약속한 문구나 표시를 넣어두면 시험관이 알아보고 좋은 점수를 주는 식이었습니다.

 

세도정치 시기에는 이게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같은 세도가문에서는 자기 집안 사람들을 대놓고 급제시켰습니다. 실록에는 과거 부정에 대한 상소가 끊이지 않았고, 임금들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과장난동, 시험장의 폭력사태

 

과거시험장에서는 폭력사태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이걸 과장난동이라고 합니다. 수천 명이 한 장소에 모여서 시험을 보니, 자리 다툼부터 시작해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미리 와서 진을 치는 건 기본이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답안지를 빼앗거나 찢어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남의 답안지를 망쳐놓으면 상대적으로 내 순위가 올라가니까요. 정조 때는 과장난동이 너무 심해서 군사를 동원해 질서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부정행위 적발되면 어떻게 됐나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처벌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협서가 발각되면 당장 시험 자격이 박탈되고, 곤장을 맞은 뒤 귀양을 가기도 했습니다. 대리시험은 더 무거워서, 의뢰한 사람과 대리 응시자 모두 처벌받았습니다. 심한 경우 영구히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벌이 이렇게 무거운데도 부정행위가 줄지 않았다는 겁니다. 급제만 하면 인생이 바뀌니까,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게다가 권력 있는 집안은 적발돼도 처벌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라에서 시도한 대책들

 

조정에서도 손 놓고 있던 건 아닙니다.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시험장 입장 전에 옷을 수색하는 수색제도를 강화했고, 답안지에 본인 이름 대신 번호를 쓰게 해서 익명성을 높였습니다. 시험관도 시험 직전에 갑자기 지정해서 미리 청탁받을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정행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 대책이 나오면 그걸 피하는 새 수법이 등장했습니다. 지금이랑 똑같죠. 인간의 욕망이 있는 한, 공정한 시험제도를 만드는 건 어느 시대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협서, 대리시험, 시험관 매수, 과장난동 등 온갖 부정행위가 있었습니다. 처벌이 무거웠지만 급제의 유혹이 더 컸기에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결국 시험을 둘러싼 경쟁과 부정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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