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간절히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을불님이 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300년, 비류하에서 배를 타던 한 남루한 소금장수가 이 말을 들었습니다. 거지와 다름없는 몰골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의젓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구려 15대 미천왕이 될 을불(乙弗)이었습니다.

궁궐에서 도망친 왕손
을불은 왕의 조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12대 중천왕, 아버지는 돌고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왕실은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 248년 중천왕의 두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됨
- 286년 서천왕이 동생 일우와 소발의 반란을 미리 알고 살해
- 292년 봉상왕 즉위 직후, 작은아버지 달가를 의심하여 살해
- 292년 봉상왕이 동생 돌고(을불의 아버지)를 역모죄로 살해
3대에 걸쳐 왕의 동생이 연이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을불은 살아남기 위해 궁궐에서 도망쳐야 했습니다.
머슴에서 소금장수로
갈 곳 없던 을불은 수실촌의 음모라는 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음모는 그가 왕손인지 몰랐기에 혹독하게 부렸습니다.
"을불아, 연못 개구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네가 밤새 돌을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해라."
낮에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밤에는 연못에 돌을 던지며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노예와 다름없는 삶. 1년 만에 을불은 그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 동촌 출신 재모와 함께 소금장수가 되었습니다. 서해안 염전에서 소금을 받아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도둑으로 몰리다
어느 날, 압록강변 사수촌의 한 노파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 을불은 숙박비로 소금 한 말을 주었지만, 욕심 많은 노파는 더 달라고 했습니다.
을불이 거절하자 노파는 몰래 자신의 신발을 소금 속에 숨겨두었습니다.
다음 날 을불이 떠나자 노파가 쫓아와 소리쳤습니다.
"이놈의 도둑놈! 내 신발을 왜 훔쳐가는 것이냐!"
압록태수는 을불을 도둑으로 판결했고, 소금은 몰수되고 매까지 맞았습니다. 소금장수조차 할 수 없게 된 을불은 거지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폭군을 몰아낸 신하들
한편 봉상왕은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흉년에도 궁궐 공사를 강행했고,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국상(국무총리) 창조리가 간청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창조리는 결심했습니다.
"이 왕을 몰아내고, 을불을 모셔야겠다."
조불과 숙우를 보내 을불을 찾았습니다. 비류하에서 배를 타던 거지 같은 을불을 발견했지만, 그의 행동은 의젓했습니다. 두 사람은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을불님은 인자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심성을 지니셨으므로, 저희가 모시고자 합니다."
봉상왕에게 쫓긴 경험이 있던 을불은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골 촌부에 불과하오. 왕손이 아니니 다시 자세히 보시오."
하지만 숙우는 확신했습니다. 을불의 말과 행동에서 왕실의 자손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300년 9월, 창조리는 사냥에 나선 신하들에게 갈댓잎을 모자에 꽂게 하여 뜻을 같이하는지 확인했습니다. 봉상왕은 폐위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소금장수 을불은 마침내 고구려 15대 미천왕이 되었습니다.
고구려를 강국으로 만들다
미천왕은 영토 확장에 나섰습니다. 당시 중국은 진나라가 통일했지만 곧 8왕의 난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302년 - 현도군 침략, 8천 명 포로 313년 - 낙랑군 축출 314년 - 대방군 축출
400년 넘게 한반도에 있던 중국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것입니다. 평양 주변과 황해도 일대의 넓은 평야를 차지했고, 중계무역의 이익도 얻었습니다.
철제 농기구와 소를 이용한 농사가 널리 퍼지면서 백성들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고구려는 미천왕 시기에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아쉬운 실패 - 모용선비
319년, 요서의 모용선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평주자사 최비가 연합 작전을 제안했고, 고구려는 단선비, 우문선비와 함께 모용선비의 수도 극성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모용선비의 계략에 빠져 연합군은 서로를 의심하고 철수했습니다. 연합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모용선비는 오히려 평주 지역까지 차지했습니다.
요하를 건너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당시는 5호 16국 시대의 시작이었고, 누구든 북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모용선비가 가로막았습니다.
고구려 역사에서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백성의 삶을 아는 왕
머슴살이와 소금장수, 거지 생활. 을불은 백성의 삶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남루한 옷차림 속에서도 왕실의 자손다운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숙우와 조불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된 후, 그 경험은 백성을 위한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농업과 상업이 발전하고, 영토가 확장되었으며, 고구려가 강대국으로 성장할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331년 미천왕이 죽자, 342년 모용선비는 고구려 수도를 함락하고 그의 무덤(서대총)을 파헤쳐 시신을 훔쳐갔습니다. 그만큼 모용선비에게 미천왕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소금장수에서 왕이 된 남자. 백성의 삶을 알았기에 더 나은 왕이 될 수 있었던 미천왕. 4세기 초 고구려를 크게 발전시킨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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