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의 한 구절입니다. 133척의 왜군 함대 앞에서 단 12척으로 맞서겠다는 선언.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해냈습니다. 31척을 격파하고 나머지를 퇴각시켰습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순신이 직접 지휘한 해전은 23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입니다. 영국의 넬슨 제독, 미국의 니미츠 제독도 이순신을 세계 최고의 해군 제독으로 꼽습니다. 그의 승리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최근 경영학계와 리더십 연구자들이 이순신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450년 전 전쟁터에서 보여준 리더십이 21세기 조직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모든 리더에게 이순신은 여전히 최고의 롤모델입니다.
철저한 준비, 승리는 전쟁 전에 결정된다
이순신의 첫 번째 리더십은 준비였습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전쟁을 대비했습니다. 당시 조정은 "왜란이 일어날 리 없다"며 안일했지만, 이순신은 달랐습니다. 일본의 정세를 분석하고, 조선 수군의 허술함을 파악했습니다.
부임 후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거북선 건조였습니다. 기존 판옥선에 철갑과 대포를 장착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신이었습니다. 거북선 설계와 건조에만 1년 이상 걸렸습니다. 주변에서는 "쓸데없는 일에 예산을 낭비한다"고 비난했지만, 이순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무기도 개량했습니다. 승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같은 화포를 대량 생산했습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는 활과 칼이었는데, 이순신은 화포의 중요성을 간파했습니다. 왜군과의 해전에서 화력이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군량미 확보에도 힘썼습니다. 둔전을 개간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보급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육군은 군량 부족으로 고전했지만, 이순신의 수군은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현대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는 갑자기 오는 것 같지만, 사실 예고된 위기입니다. 징조를 읽고 미리 준비한 조직만이 살아남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갖춘 기업들이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솔선수범, 부하와 운명을 함께하다
이순신의 두 번째 리더십은 솔선수범이었습니다. 그는 전투 때마다 선봉에 섰습니다. 지휘관은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곳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명량해전에서 그의 배는 적선 30여 척에 포위됐습니다. 어깨에 총탄을 맞았지만, 부하들의 사기를 위해 숨기고 싸웠습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얼마나 부하를 아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사한 병사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오늘 김춘 화살에 맞아 죽다", "이순신 왜군에게 칼을 맞아 전사하다" 같은 기록이 200건이 넘습니다. 장수가 병졸 하나하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상자와 전사자 가족에 대한 지원도 철저했습니다. 부상병은 치료하고 회복할 때까지 식량을 지급했습니다. 전사자 가족에게는 집과 농토를 마련해줬습니다. 부하들은 이순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명량해전에서 12척으로 133척과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병사들의 충성심 덕분이었습니다.
반대로 권율 장군 휘하의 수군은 사기가 낮았습니다. 장수가 뒤에서 안전하게 명령만 내리고, 공은 혼자 차지하고, 병사들을 소모품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된 것도 리더십 부재가 원인이었습니다.
현대 조직에서도 동일합니다. 리더가 어려울 때 함께 고생하고, 성과는 팀원들에게 돌리는 조직이 강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위기 때 CEO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리더의 헌신이 조직을 살립니다.
냉철한 판단, 감정이 아닌 원칙으로
이순신의 세 번째 리더십은 원칙이었습니다. 그는 사적인 감정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1597년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해 전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원균을 비난했습니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파직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원균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개인적 감정과 공적 판단을 분리했던 것입니다.
군율도 엄격했습니다. 전투 중 도망친 병사는 신분에 관계없이 처벌했습니다. 하지만 처벌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공을 세운 병사는 즉시 승진시키고 포상했습니다. 신분이 낮은 병사도 공이 있으면 장수로 발탁했습니다. 능력 중심의 인사였습니다.
정보 수집과 분석에도 철저했습니다. 전투 전에는 반드시 지형을 탐사하고, 조류와 바람을 계산했습니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울돌목은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합니다. 이순신은 조류가 바뀌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조류를 이용해 적의 대선단을 좁은 해협으로 유인하고 격파했습니다.
감정적으로 판단했다면 명량해전은 치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12척으로 133척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지형, 조류, 병사들의 사기, 적의 약점을 모두 계산했습니다. 승산이 있다는 냉철한 판단 아래 전투를 결정했습니다.
현대 경영에서 위기 상황일수록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판단해야 합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직관을 믿되, 데이터로 검증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순신은 450년 전에 이미 이것을 실천했습니다.
이순신이 현대에 주는 교훈
이순신의 리더십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준비하고, 솔선수범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가 위기 상황에서 이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위기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리더, 가장 위험한 일을 먼저 맡는 리더, 감정이 아닌 원칙으로 판단하는 리더. 이순신의 리더십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전쟁터든 회사든 팀이든, 사람을 이끄는 원리는 같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명량해전 전날 밤,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신론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넘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그의 지혜, 부하를 감동시킨 그의 헌신, 냉철하게 판단한 그의 원칙. 당신이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프로젝트를 책임진 담당자라면, 이순신에게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난중일기를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화려한 승전보가 아니라, 매일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천한 기록입니다. 위대한 리더십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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