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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백성 사랑만은 아니었다

by 정보정보열매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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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백성 사랑만은 아니었다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한글 창제 이야기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는 백성 사랑 이상의 복잡하고 전략적인 이유들이 숨어 있습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한글 창제를 단순한 애민 정신만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세종의 치밀한 계산이 보입니다. 위대한 업적 뒤에 숨은 현실적인 이유들을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문자에 대한 독립, 문화 주권의 문제

조선시대에는 한자만이 공식 문자였습니다. 공문서, 법률, 역사서, 모든 기록이 한자로 작성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자는 중국 글자입니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라산"이라는 고유명사를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금"은 한자로 쓸 수 없어 "王(왕)"으로 대체했습니다. 우리말 특유의 조사 "이, 가, 을, 를"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세종은 이것을 문화적 예속이라고 봤습니다. 명나라에 정치적으로 사대하는 것도 모자라, 글자까지 중국 것을 쓰는 상황. 진정한 독립 국가가 되려면 자기 문자가 필요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이유입니다.

실제로 한글 창제 후 세종은 우리말 사전인 『동국정운』을 편찬했습니다. 한글로 우리말을 정리하고 표준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것은 문화적 독립 선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종대왕

왕권 강화의 도구, 양반을 견제하다

조선 초기 왕권은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웠지만, 실제 권력은 개국공신과 유교 사대부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 그토록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한 이유도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자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수십 년을 공부해야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양반들은 이 문자 독점으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법률을 해석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모두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세종은 여기에 균열을 내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쉬운 문자를 만들면 양반의 지식 독점이 무너집니다. 백성들이 직접 왕의 명령을 읽을 수 있고, 억울함을 글로 호소할 수 있습니다. 왕이 신하들을 거치지 않고 백성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생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양반들의 반발은 극심했습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상소를 올려 반대했습니다. "오랑캐 글자 같다", "중국을 섬기는 데 불편하다"며 온갖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법치주의의 완성, 백성도 법을 알아야 한다

세종은 법치주의를 추구한 군주였습니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면 백성들도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자로 된 법전을 읽을 수 있는 백성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당시 문자 해독률은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훈민정음 서문의 이 구절은 단순히 감상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법률적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법을 모르는 백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세종은 한글로 법률을 풀어 쓰고, 백성들이 직접 상소를 올릴 수 있게 했습니다. 1444년 펴낸 『용비어천가』는 한글로 쓴 최초의 공식 문헌입니다.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직접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론 정치의 시작이었습니다.

형조에서는 한글로 쓴 판결문을 시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을 이해하고, 억울하면 다시 항소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500년 전 조선에서 시작된 사법 개혁이었습니다.

국방과 군사 목적, 정보 전달의 효율성

당시 조선은 북쪽으로는 여진족, 남쪽으로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습니다. 군사 명령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국방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자는 배우기 어려워 일반 병사들이 읽지 못했습니다.

장수가 구두로 명령을 전달하거나, 한자를 아는 소수 서기관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전시에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정보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거나, 명령이 왜곡될 수 있었습니다.

한글은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루면 기본을 깨칠 수 있고, 일주일이면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병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 작전 명령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봉화나 파발보다 빠르게 문서로 명령을 보낼 수 있습니다.

세종 말년에 편찬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불교 서적입니다. 세종은 왜 불교 책을 한글로 펴냈을까요?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한 개인적 동기도 있었지만, 한글 보급의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불경을 통해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 지식의 대중화

세종은 과학을 중시한 왕이었습니다. 측우기, 자격루, 해시계, 앙부일구 등 수많은 과학 기기를 발명했습니다. 칠정산을 편찬해 우리나라 하늘에 맞는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학 지식이 한자로만 기록되면 소수 양반만 알 수 있습니다.

세종은 농사 기술서 『농사직설』을 편찬했습니다.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책입니다. 하지만 한자로 쓰여 있어 정작 농사를 짓는 백성들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한글이 있었다면 이런 실용서를 백성에게 직접 보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글 창제 이후 의학서도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간단한 처방을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한자를 아는 양반을 찾아가지 않아도, 직접 의서를 보고 약초를 찾을 수 있게 하려 한 것입니다.

세종의 한글, 500년을 앞서간 혁명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백성 사랑, 문화 독립, 왕권 강화, 법치주의, 국방 강화, 과학 발전. 이 모든 목적이 한글이라는 하나의 결과로 모였습니다. 이것이 세종을 위대한 군주로 만든 이유입니다. 여러 문제를 하나의 해법으로 해결한 탁월한 통찰력입니다.

한글은 창제 당시에는 제대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양반들의 반대로 공식 문서는 여전히 한자로 작성됐습니다. 한글은 주로 여성이나 하층민이 쓰는 '언문'으로 천대받았습니다. 세종의 뜻이 제대로 실현된 것은 19세기 말 개화기에 와서였습니다.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배우기 쉽고, 표현력이 뛰어나고, 정보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입니다.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인 이유입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백성이 글을 읽으면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혜안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과 문해율로 이어졌습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세종이 꿈꾼 이상 국가의 설계도였습니다. 문화 독립, 왕도정치, 법치주의, 지식 민주화. 21세기에야 제대로 이해되는 가치들을 15세기에 이미 문자에 담아낸 것입니다. 한글날에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이런 깊은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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