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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흥선대원군의 몰락, 집권 10년 만에 아들에게 쫓겨난 권력자

by 정보정보열매 202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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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몰락, 집권 10년 만에 아들에게 쫓겨난 권력자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10년간 조선을 지배했던 남자. 하지만 며느리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쫓겨났습니다. 흥선대원군, 조선 말기 가장 강력했던 권력자이자 가장 극적으로 몰락한 인물. 그는 왜 무너졌을까요?

왕족 최하위에서 권력 최정상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1820년 태어났습니다. 왕족이긴 했지만 방계 중의 방계, 가난한 종친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빚에 쪼들리며 동냥으로 연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양반들은 그를 무시했고, 벼슬길도 막혀있었습니다.

1863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이하응의 둘째 아들이 왕으로 선택된 겁니다. 12세 고종의 즉위입니다. 왕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법적으로는 왕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원군'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실권은 완전히 대원군이 쥐었습니다. 어린 아들 대신 모든 국정을 결정했습니다. 사실상 조선의 왕이었죠. 10년간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쳤습니다. 부패한 관리를 숙청하고, 서원을 대폭 정리하고, 경복궁을 중건했습니다.

권력의 적은 며느리였다

문제는 며느리 민비(명성황후)였습니다. 1866년 고종이 민비와 결혼했고, 민비는 똑똑하고 야심찬 여성이었습니다. 시아버지가 권력을 독점하는 걸 참을 수 없었죠. 남편 고종도 점점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집했습니다. "서양 오랑캐를 막아야 한다"며 천주교를 탄압하고, 외국과의 통상을 거부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났지만 대원군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민비는 달랐습니다. "세상이 변하는데 문을 닫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척 세력인 민씨 일족을 끌어들여 세력을 키웠고, 고종을 설득했습니다. "이제 친정을 해야 한다"고.

1873년, 아들에게 쫓겨나다

1873년 11월, 고종이 선언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겠다." 친정 선포였습니다. 대원군은 권력에서 밀려났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쫓아낸 겁니다. 뒤에서 민비가 조종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대원군은 운현궁에 틀어박혔습니다. 10년간 절대 권력을 누렸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개혁 정책들은 하나둘 폐기되었고, 민씨 척족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1882년, 대원군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겁니다. 구식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민비를 습격했고, 대원군은 잠시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단 며칠. 청나라가 개입해 대원군을 납치해갔습니다. 3년간 텐진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왔지만, 권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의 죽음을 보고 세상을 떠나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자객들이 궁궐에 난입해 민비를 시해했습니다. 대원군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며느리를 미워했으니 일본에 협조했을 거라는 의심이었죠. 진실은 불분명합니다.

1898년, 대원군은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권력을 잃은 지 25년, 며느리와의 싸움에서 진 지 25년 만이었습니다. 생애 마지막까지 권력을 되찾지 못했고, 조선은 그가 죽은 지 12년 후 멸망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삶은 권력의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추락도 빨랐습니다.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지만 아들에게 쫓겨났고, 며느리와의 권력 싸움에서 졌습니다. 강력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조선은 그가 막으려던 길로 가다가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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