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왕은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신하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죠. 그런데 그런 왕도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이었어요. 오늘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정신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를 소개해 드릴게요.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
1404년(태종 4년) 2월 8일, 태종 이방원은 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노루를 쏘려던 순간, 말이 갑자기 비틀거리면서 태종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이 장면을 주변 사람들이 다 봤다는 거였죠.
창피했던 태종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왕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창피한 사실이 역사에 남는 게 싫었던 거예요.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그 말까지 다 적어버린 사관
태종실록을 펼쳐보면, 이날의 기록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네, 제대로 보신 겁니다.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것도 기록하고, "쓰지 말라"고 한 말까지 그대로 기록해버린 거예요.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태종은 자신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사관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사관이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라고 한 말까지 몽땅 기록한 것입니다.
이 일화는 조선왕조실록 및 한국 역사 기록의 정확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로, 해외에서도 밈이 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왕을 노이로제에 걸리게 한 사관, 민인생
이 기록을 남긴 사관이 누구였을까요? 일화에 등장하는 사관은 민인생이라는 인물인데, 민인생은 스토커처럼 태종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태종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고 다녔습니다.
민인생의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더 있어요.
태종이 측근들만 데리고 갔을 때는 몰래 일행인 척 따라갔습니다. 태종이 내려가다가 다리를 헛딛은 적이 있었는데, 누가 보지 않았나 하고 안심했지만 민인생은 왕궁의 돌다리 아래에서 다 지켜보고 있어서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태종이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뭔가 인기척이 있어서 놀라 병풍을 치우니 민인생이 있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왕 입장에서는 정말 진절머리가 났을 거예요. "작작 좀 해라"라고 하면 그 말도 기록하겠다고 했다니, 태종도 답이 없었겠죠.
왕도 볼 수 없었던 실록
그렇다면 왕의 신하인 사관이 어떻게 왕의 명령까지 거부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비밀은 조선의 실록 편찬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사초는 사관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고 보고 들은 내용과 자신이 판단한 논평까지를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서, 사관 이외에는 국왕조차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자료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실록은 왕이 죽은 뒤에 편찬되었고, 살아있는 왕은 자신의 기록은 물론 이전 왕의 기록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어요.
세종 20년에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폭군으로 묘사되었을까 염려되어 태종 실록을 열람하고 싶다는 뜻을 신하들에게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이었던 황희 정승은 "불가하다"고 엄하게 반대했습니다.
황희는 이렇게 말했어요. "왕이 실록을 보면 후세 사람들이 잘못된 일을 옳게 꾸미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며, 사관은 기록에 두려움을 느껴 결국 후손이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요. 결국 세종도 실록 열람을 포기했습니다.
왕은 왕이고, 사관은 사관이고, 정승은 정승이었던 거죠.
세계가 인정한 기록 정신
특히 조선 초·중기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은 왕이 기록하지 말라고 한 사소한 것도 기록한 것, 재위 중인 왕 및 다음 왕까지 실록 확인을 하지 못하는 점으로 보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객관적이고, 한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증거로 평가받습니다.
472년간 25대 왕의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은 1,894권 888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한 왕조가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사례는 세계 역사에서도 찾기 어려워요.
기록하지 말라고 말한 왕의 말까지 기록하는 사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원칙을 중시하는 사관의 고지식함에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마무리
600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태종이 말에서 떨어져서 창피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왕이 숨기고 싶었던 그 순간이 역사에 고스란히 남은 거죠. 어쩌면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기록의 정신' 덕분에,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가끔 우리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기록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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