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떡국 먹었으니 이제 한 살 더 먹었네, 하는 말입니다. 어릴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풍습입니다. 왜 하필 떡국이었을까요. 세배는 언제부터 했을까요. 설빔은 왜 새옷이어야 했을까요.
저도 예전에는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나하나 다 이유가 있더군요. 올해 설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실 수 있도록, 우리가 궁금해하면서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던 설 풍속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Q. 설날은 언제부터 명절이었나요?
설날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삼국유사에는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에 설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 1,500년 이상 된 명절인 셈입니다.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가 하나의 축제 기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약 15일 동안 이어지는 긴 명절이었던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설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나이를 세는 의존명사 살과 같은 뿌리라는 학설입니다. 실제로 살의 원래 형태가 설이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한 살을 먹는 날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Q. 떡국은 왜 설날에 먹게 되었나요?
떡국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흰떡을 사용하는 것은 새해 첫날의 밝음을 상징합니다.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니 깨끗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뜻에서 흰 떡을 썼다고 합니다.
가래떡을 길게 뽑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떡을 쭉쭉 길게 뽑듯이 재산도 그만큼 늘어나고, 수명도 길어지라는 뜻입니다.
썰 때 동그랗게 써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고, 또 다른 해석으로는 옛날 화폐인 엽전 모양을 본떠서 재물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도 합니다.
조선시대 서울의 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에는 떡국 만드는 법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좋은 멥쌀을 빻아 곱게 친 흰가루를 쪄서 떡메로 쳐서 길게 만든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어 꿩고기나 쇠고기 육수에 끓인 음식이라고요. 원래는 꿩고기를 썼는데, 구하기 어려우니 닭고기로 대신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Q. 세배는 언제부터 했나요? 세뱃돈은요?
세배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문집에도 정월 초하루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배의 순서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낸 후, 집안 어른들께 먼저 절을 올립니다. 그다음 친척 어른, 이웃 어른 순서로 세배를 다녔습니다. 세배를 받은 어른은 덕담을 해주었고, 아이들에게는 떡이나 과일, 그리고 세뱃돈을 주었습니다.
세뱃돈의 역사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기록에도 아이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봉투에 넣어주는 형태가 아니라, 엽전 몇 닢을 쥐어주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Q. 설빔은 왜 꼭 새옷이어야 했나요?
설빔은 설날 아침에 갈아입는 새옷을 말합니다. 열양세시기에는 세비음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새해 첫날 새옷을 입는 것은 단순히 새것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묵은해의 나쁜 기운을 버리고 새로운 기운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깨끗한 옷으로 깨끗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설빔은 대개 색깔이 있는 화려한 옷으로 마련했고,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헌 옷을 빨아서라도 깨끗하게 차려입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Q. 설날에 술을 데우지 않고 마셨다는데, 왜 그랬나요?
설날에 마시는 술을 세주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주불온이라고 해서 설날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채로 마셨다는 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무리 한겨울이라도 새해가 되면 봄기운이 들기 시작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뜻한 술 대신 찬 술을 마시며, 봄을 맞이하고 일할 준비를 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설날에는 도소주라는 특별한 술도 마셨습니다. 계수나무 껍질, 산초, 도라지, 방풍 등 여러 약재를 넣어 만든 술인데, 이 술을 마시면 한 해 동안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일종의 건강 기원 의식이었던 셈입니다.
Q. 복조리는 왜 새벽에 샀나요?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어둠 속에서 복조리 사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 복조리를 샀습니다.
조리는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입니다. 쌀을 일면 돌이나 쭉정이 같은 것은 빠지고 쌀알만 남습니다. 여기서 복을 걸러 담는다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조리로 복을 걸러 담듯이,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걸러낸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사는 이유는 남들보다 먼저 복을 받겠다는 마음입니다. 밤에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라도 샀는데, 어쨌든 설날 아침 일찍 복조리를 사 두면 1년 동안 복을 많이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복조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Q. 일제강점기에 설날이 금지되었다는데 사실인가요?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탄압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1896년 태양력이 도입되면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쇠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일제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음력설을 억압했습니다. 양력 1월 1일을 신정, 음력 설을 구정이라 부르게 한 것도 이때입니다.
그러나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음력설을 계속 쇠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정부는 양력설을 밀었지만, 국민들은 음력설을 고수했습니다. 직장인들은 연차를 내고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결국 1985년에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이 되었고, 1989년에 설날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1991년부터 3일 연휴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설날이 제 이름을 되찾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린 셈입니다.
마무리하며
설날의 풍속 하나하나에는 우리 조상들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흰떡에는 청결과 밝음에 대한 기원이, 긴 가래떡에는 장수와 번영에 대한 소망이, 새옷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올해 설에는 떡국 한 그릇 드시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같은 명절이라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입니다.
곧 다가올 설 연휴, 건강하고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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