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음력 1월 1일, 그날도 어김없이 조선 팔도에서는 떡국 끓이는 냄새가 골목마다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나 그해부터 조선에는 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종이 태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도입하면서 양력 1월 1일이 새해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물론 백성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음력설을 쇠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우리 설날 수난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설빔 입은 아이에게 먹물을 뿌리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세시명절마저 억압했습니다.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며 신정이라 부르고, 원래 우리가 지내던 음력설은 낡고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이라 격하시켰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고등계 형사들이 설을 앞두고 방앗간에 나가 영업 여부를 감시했습니다. 떡을 찧지 못하게 해서 차례상을 차리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 조선 아이들을 보면 옷에 먹물을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음력설을 지키는 조선인은 불령선인, 즉 불온한 조선인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압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우리 국민들은 신정을 왜놈들이 정한 명절이라며 더욱 지키지 않았습니다. 설날을 지키는 것 자체가 민족의 저항이 된 셈입니다.
해방 후에도 계속된 설날의 수난
1945년 해방이 왔습니다. 이제 설날이 온전히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1949년 6월 4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령 제124호로 양력설만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정부가 내건 명목은 이중과세, 즉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의 설을 쇠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음력설을 폐습적인 풍속으로 간주하고 시간 낭비와 물자 낭비의 원인이라며 신정단일과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1961년에도 방앗간 앞은 가래떡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공휴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음력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81년 12월에는 신정단일과세의 정착화를 위한 국무총리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모든 공직자는 구정과세를 절대로 하지 말 것, 구정 관련 행정지원을 가급적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신정에 귀성열차 요금을 할인하고, 재소자나 군인에게 구정 특식인 떡국 제공을 자제하라는 지시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저항은 끈질겼습니다. 1981년 조사에 따르면 음력설을 지내는 국민이 전체의 81.8퍼센트에 달했습니다. 공휴일이 아닌데도 열에 여덟 이상이 음력설을 지킨 것입니다.
민속의 날이라는 어색한 이름
결국 정부는 국민 여론에 손을 들었습니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는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에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설날이 아닌 민속의 날이라는 어색한 명칭에다 단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된 데 대해 반쪽 설이라며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해 민속의 날,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은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큰 불편을 겪었지만 마음만은 밝았습니다. 구정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 대해 온 국민이 즐거운 마음이었다고 당시 뉴스는 전했습니다.
1989년, 드디어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였습니다. 1989년 1월 24일, 70여 년 만에 설날을 설날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부와 민정당은 당정회의를 열어 구정의 명칭을 설날로 변경하고 설날 연휴를 전후 3일간으로 확대했습니다. 대신 신정 연휴는 3일에서 2일로 축소되었습니다.
1989년 2월 1일 관공서의 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앞뒤로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드디어 설날이 완전한 민족 명절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후 1999년부터는 신정이 1월 1일 하루만 공휴일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우리 고유의 설날이 최대 명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설날 연휴는 불과 36년 전에야 온전히 되찾은 것입니다. 1896년 양력 도입, 일제강점기의 탄압, 해방 후 정부의 신정단일과세 정책까지 거의 100년 가까이 설날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끈질기게 음력설을 지켜왔고, 결국 1989년에 이르러 설날이라는 본래의 이름과 3일 연휴를 되찾았습니다. 올해 설 연휴에 가족과 함께 떡국 한 그릇을 나누실 때, 이 설날이 지나온 역사를 한번 떠올려보시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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