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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이자율 100%? 조선시대 사채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

by 정보정보열매 202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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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율 100%? 조선시대 사채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

 

안녕하세요! 오늘은 '빚'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조선시대의 사채 시장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요즘 우리는 법적으로 대부업 최고 이자율이 20%로 정해져 있지만, 만약 여러분이 돈을 빌렸는데 이자율이 50%, 심지어 100%에 달한다면 어떨까요? "에이, 설마" 싶겠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마주해야 했던 무서운 현실이었습니다. 🤔

'고리식(高利式)'이라 불렸던 조선의 대부업. 과연 그 실체는 어떠했으며,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리고 나라는 이 살인적인 사채 시장을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요? 오늘은 조선시대판 '쩐의 전쟁'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사채꾼

🧐 '고리식', 누가 왜 했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에 돈놀이, 즉 '고리식'은 일부 악덕업자만 하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전국민적인 재테크 수단이었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공 대출인 '공채(公債)'는 물론이고, 고위 관료, 양반, 심지어 사찰의 스님들까지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고리식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만큼 돈을 빌리려는 수요도, 빌려주려는 공급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 공채(公債): 나라에서 운영. 이자율은 비교적 '저렴한' 연 20% 수준.
  • 사채(私債): 개인이 운영. 여기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 50%는 기본, 100%는 옵션? 살인적인 이자율

조선시대 민간 사채의 일반적인 이자율은 무려 연 50%였습니다. 100만 원을 빌리면 1년 뒤에 150만 원을 갚아야 하는 셈이죠.

하지만 이걸로 놀라기엔 이릅니다. 악독한 업자들은 연 100%의 살인적인 이자(장리, 長利)를 받기도 했습니다. 100만 원을 빌리면 1년 뒤 원금만큼의 이자가 붙어 200만 원을 갚아야 하는 구조였죠.

여기에 더욱 무서운 함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복리 계산'입니다. 만약 100만 원을 100% 이자로 빌리고 1년 뒤에 갚지 못하면, 빚은 원금과 이자를 합친 200만 원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이자는 원금 100만 원이 아닌, 빚 200만 원을 기준으로 다시 100%가 붙어 400만 원으로 불어나는 방식이었습니다.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한번 발을 들이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었던 셈이죠.


👊 "돈 갚아라"... 잔혹한 빚 독촉

이렇게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선시대 빚 독촉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했습니다.

단순히 찾아와 괴롭히는 것을 넘어, 채찍으로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빚 독촉 과정에서 채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다른 곳에 버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위장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빚 때문에 쫓기다 못해 도둑질을 하거나 범죄의 길로 빠지는 백성들도 늘어나면서, 고리식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 나라의 노력, '자모상모'를 아시나요?

물론 나라에서도 이 문제를 손 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적 장치를 마련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모상모(子母相毛)'라는 법입니다. 한자 뜻 그대로 "아들(子, 이자)이 어머니(母, 원금)와 같아지면 멈춘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자가 아무리 불어나도 원금을 초과할 수 없도록 법으로 막아놓은 것이죠. 100% 이자율이라도, 원금 100만 원에 대한 이자는 최대 100만 원까지만 받을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제도였습니다.

이 외에도 세종대왕은 공채 이자를 3%로 제한하기도 했고, 숙종과 영조는 모든 대출 이자를 20% 이내로 묶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힘 있는 양반이나 악덕 사채업자들은 이러한 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백성들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마무리하며

이자율 100%, 잔혹한 빚 독촉,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국가의 노력. 조선시대의 사채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와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자모상모'와 같이 백성을 보호하려는 지혜로운 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감시망을 피해 서민들을 옥죄었던 고리대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씁쓸한 현실인 것 같습니다. 돈 때문에 고통받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통해, 오늘날 금융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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