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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에도 컨닝이 있었다? 과거시험 부정행위의 충격적인 역사

by 정보정보열매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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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컨닝이 있었다? 과거시험 부정행위의 충격적인 역사

 

📚 시험이 있는 곳엔 언제나 컨닝이 있었다

요즘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큰 뉴스가 되죠. 그런데 혹시 조선시대에도 컨닝이 있었을까요? 정답은 "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창의적이고 조직적이었다"입니다. 콧구멍 속에 커닝페이퍼를 숨기고, 노비를 사서 대리시험을 치르게 하고, 심지어 시험관과 짜고 합격자 명단을 바꿔치기까지... 오늘은 조선 선비들의 충격적인 부정행위 역사를 들여다볼게요.


🎯 과거시험, 왜 그렇게 목숨을 걸었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관직에 올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시험 준비에 고군분투했습니다. 과거시험은 입신양명을 위한 필수코스였기 때문입니다.

30대가 과거 합격 평균연령인데다 심하면 70세를 넘어 과거에 급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만큼 급제 열풍은 부작용을 낳기 충분했습니다.

평생을 걸어 준비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니, 유혹에 빠지는 사람도 많았던 거죠.


🔍 조선판 컨닝의 종류 (과거 팔폐)

조선시대에는 대표적인 과거시험 부정행위를 '과거 팔폐(科擧八弊)'라고 불렀어요. 하나씩 살펴볼까요?

1. 고반(顧盼) - 옆 사람 답안지 훔쳐보기

고반은 고개를 돌려서 옆의 답안지를 베끼는 것으로, 부정행위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지금이랑 똑같죠? 시험의 역사와 함께한 가장 클래식한 컨닝이에요.

2. 낙지(落地) - 일부러 답안지 떨어뜨리기

낙지는 답안지를 일부러 땅에 떨어뜨려서 다른 사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응시자 사이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매수된 시험관이 행하기도 합니다.

3. 설화(說話) - 옆 사람과 의논하기

설화는 옆사람과 의견을 나누어서 답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4. 의영고(義盈庫) - 콧구멍 속 커닝페이퍼!

의영고는 콧구멍 속에 커닝 종이를 숨기는 행위입니다.

의영고는 궁중에서 필요한 기름·꿀·과일 등의 물품을 관장하는 관청을 말하는데, 답안 작성에 필요한 각종 자료가 콧구멍에 있다고 해서 이를 풍자한 것입니다.

콧구멍에 종이를 말아 넣다니, 정말 기상천외하죠?

5. 협서(挾書) - 붓 속에 숨긴 종이

협서는 붓대 끝에 작은 종이 커닝 종이를 숨기는 것입니다.

수종협책은 책 자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지만, 콧구멍 속에 숨기는 의영고, 붓 속에 숨기는 협서 등 다양하게 존재했습니다.


👤 대리시험까지 등장하다

사진이 없던 시대, 본인 확인이 어려웠기에 대리시험도 성행했어요.

1566년(명종 21년)에 글자도 잘 모르는 심진·심자·심전 세 사람이 대리시험으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러자 성균관에서 그들을 돈 주고 산 생원, 진사라는 뜻의 '상가상사'라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어요.

어떤 양반은 머리가 좋은 노비를 사와서는 공부를 시킨 뒤 대리시험을 치르게까지 했습니다.

대인이라는 대리시험도 있었는데, 사진첨부가 없었던 때라 수월했겠지만 대체로 감독관과 내통한 권력형 대리시험이었다고 합니다.


🤝 조직적 부정행위: 시험관과의 결탁

개인 컨닝보다 더 심각했던 건 권력층과의 결탁이었어요.

사실 개인이 저지르는 부정행위보다 조직적으로 행해지던 부정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응시자가 권력층과 결탁하거나 시험관과 짬짜미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절과(竊科) - 합격자 이름 바꿔치기

절과는 합격자의 답안지에서 이름 부분만 미리 정해진 사람과 바꿔붙이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은 합격자 하나가 확실하게 떨어집니다.

혁제(赫蹄) - 시험관과 응시자의 결탁

혁제는 시험관과 응시자가 결탁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하여 암송 시험 때에는 과거 응시자와 시험관을 분리시키는 장막을 쳤습니다.

실제 사례: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방목'

1610년(광해군 2년)에 시행된 문과 별시에서 정권의 실세였던 이이첨의 사돈 등 시험관의 친인척들이 대부분 합격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때의 합격자 명단을 적은 책을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방목'이라고 비아냥거린 일로 유명합니다.


📋 시험장의 전문 부정행위 조직까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장 입구에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가 과거일 새벽 과장에 진입해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횡포가 만연했습니다. 이들은 건장한 행동대원으로 '선접꾼'이라 불렀습니다.

'접'은 과장에서 서로 상부상조하기로 밀약이 오고간 일종의 부정을 담합한 그룹을 뜻합니다. 이들 중에는 과장에서 전문적으로 답안지 내용을 대신 지어주는 '거벽', 전문으로 답안지에 글씨를 써주는 '사수'까지 있었습니다.

답안 작성 전문가, 글씨 대필 전문가까지 있었다니... 정말 조직적이었네요!


⚖️ 부정행위 처벌은 어땠을까?

법적으로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응시생이 과거시험 보다가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베껴서 쓸 경우에는 곤장 100대에 3년간 막노동을 강제당했고, 미리 책을 들고 올 경우에도 과거응시자격이 3년간 박탈당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종 29년 3월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까지 마련되었는데, 곤장 100대와 도형 3년을 집행하고 시관 가운데 응시자에게 문제를 누설하거나 봉미를 엿본 사람들도 관리에 항구히 임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금란관이라는 시험관이 부정행위 유형별로 열 개의 도장을 준비했다가 커닝이나 예비부정행위가 발생하면 그 수법에 따라 각기 다른 도장을 시험지에 찍음으로써 급락 판정에 참작토록 했습니다.

눈 굴리면 '고반' 도장, 중얼거리면 '음아' 도장, 시험지 바꾸면 '환권' 도장... 부정행위 전용 도장이 10가지나 있었대요!


😱 결국 시험장은 난장판이 되다

조선 말기엔 과거제 자체가 막장이 되어 '난장판'이란 말의 유래가 될 정도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당시 과거장을 그린 그림을 보면 아주 파라솔까지 펴놓고 느긋하게 모여앉아 다과회라도 나누는 듯한 풍경입니다.

조선시대 후대로 내려오면서 남의 글을 표절하거나 책을 끼고 들어가거나, 시험문제를 미리 알아내는 등, 온갖 부정행위가 공공연하게 성행함으로써 그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의 폐단이 날로 갈수록 심해져 까막눈이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있다면 장원을 차지하는 일이 심해졌습니다.


📊 조선시대 과거 부정행위 유형 정리

명칭 방법 현대 비유

고반 옆 사람 답안지 훔쳐보기 옆자리 컨닝
의영고 콧구멍에 종이 숨기기 커닝페이퍼
협서 붓 속에 종이 숨기기 필기구 속 쪽지
대인 대리시험 대리시험
절과 합격자 이름 바꿔치기 성적 조작
혁제 시험관과 결탁 출제자 매수
선접 좋은 자리 선점 조직 시험장 브로커

📝 마무리하며

조선시대 관료들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에는 상상 이상으로 부정과 비리가 많았는데 특히 왕과 권력층에 의한 특혜와 권력형 부정행위가 만연했습니다.

시험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부정행위의 유혹이 있었네요. 콧구멍 속 커닝페이퍼라니, 조선 선비들의 창의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결국 부정행위가 만연하면 제도 자체가 무너진다는 교훈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죠. 공정한 시험의 중요성,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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