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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과거시험 커닝의 역사, 콧구멍에 답안지를 숨겼다고요?

by 정보정보열매 202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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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뉴스에 크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시험 부정행위의 역사는 시험 제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콧구멍에 커닝 종이를 숨기고, 붓대 안에 답안을 넣고, 땅속에 대나무 통을 묻어서 정보를 전달하고. 지금 들으면 황당하지만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과거시험 500년 역사 속에 펼쳐진 부정행위의 세계, 한번 들여다볼까요.

목숨 걸고 치른 시험, 그만큼 부정도 치열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아시나요. 정기시험인 식년시는 3년에 한 번 열렸는데, 문과 대과 최종 합격자는 단 33명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응시해서 33명만 뽑으니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1800년 정조 시대에 열린 특별시험에는 이틀 동안 무려 21만 명이 몰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려고 서로 밀치다가 밟혀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과거에 급제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만에 하나의 영광을 축하할 마음은 없지만, 열에 아홉은 저승에 갈 위험한 시험장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축하한다고요.

평균 합격 나이가 30대였고, 70세가 넘어서 급제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만큼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려는 유혹도 컸던 겁니다. 세종 29년에 이미 부정행위 처벌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영고, 협서, 혁제, 조선판 커닝의 세계

조선시대 부정행위에는 전문 용어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형이 다양하고 체계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건 고반입니다. 고개를 돌려 옆 사람 답안지를 훔쳐보는 거죠. 시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부정행위의 고전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게 낙지인데, 일부러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려서 다른 사람이 보게 하는 수법입니다. 옆사람과 소곤소곤 의견을 나누는 건 설화라고 불렀습니다.

진짜 창의적인 건 커닝페이퍼 숨기기였습니다. 의영고라는 게 있었는데, 이건 콧구멍 속에 작은 종이를 말아서 숨기는 방법입니다. 협서는 붓대 안에 아주 작은 종이를 넣어두는 수법이고요. 쥐수염으로 만든 붓으로 깨알같이 사서삼경을 베껴 쓴 조끼를 입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그 노력으로 공부했으면 합격했을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 참 묘합니다.

시험관을 매수하고, 대리시험까지 치렀습니다

개인적인 커닝보다 더 심각한 건 조직적인 부정행위였습니다. 혁제라고 해서 시험관과 응시자가 미리 짜고 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시험 문제를 미리 알려주거나, 특정 답안지에 좋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었죠. 이걸 막기 위해 경전 암송 시험을 볼 때는 시험관과 응시자 사이에 장막을 치기도 했습니다. 또 역서라고 해서 응시자의 글씨를 시험관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별도의 필사원이 답안을 베껴 쓰게 하는 제도도 있었습니다.

대리시험도 빈번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름을 속이고 대신 시험을 치르는 거죠. 무과 시험에서는 활을 대신 쏴주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상황은 더 심해져서, 까막눈이어도 뒤를 봐줄 사람만 있으면 장원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뇌물과 정실, 문벌과 당파에 따라 급제와 낙제가 결정되니 과거제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겁니다.

땅속에 대나무 통을 묻은 대형 부정사건

1705년 숙종 시대에는 정말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성균관에서 과거시험이 열렸는데, 시험장 바닥 어딘가에서 노끈이 발견된 겁니다. 조사해보니 명륜당 뒤 산쪽에서 성균관 담장 밑을 통과해 시험장 안까지 이어지는 비밀 통로였습니다. 긴 노끈을 이은 대나무 통을 땅속에 묻고, 비늘처럼 이어 구멍을 통하게 한 뒤 기와를 덮어 은폐한 겁니다. 시험장 밖에서 문제를 받아 답을 써서 안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수사 끝에 이런 노끈이 여러 개 더 발견되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비둘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해서 문제를 적어 날려 보내면 답안이 돌아오는 방식이었다는데, 쥐수염 붓으로 아주 작은 글씨를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처벌은 엄했지만, 막지는 못했습니다

법적으로 부정행위 처벌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다른 사람 답안을 베껴 쓰면 곤장 100대에 3년간 강제 노역이었습니다. 책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면 과거 응시 자격이 3년간 박탈됐고, 시험관이나 중간 브로커도 영구히 관직에 임용될 수 없었습니다. 고종 시대에는 수십 명이 부정행위로 제주도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처벌이 엄해도 부정행위는 줄지 않았습니다. 숙종 시대에 언급된 과거 팔폐, 즉 과거시험의 여덟 가지 폐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금란관이라는 시험관이 따로 있었는데, 이 사람은 부정행위 유형별로 열 개의 도장을 준비하고 있다가 적발하면 시험지에 찍었습니다. 옆을 훔쳐보면 고반, 중얼거리면 음아, 시험지를 바꾸면 환관이라는 도장이 찍혔습니다. 이 도장이 찍히면 채점에 불이익을 받았죠.


과거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936년간 존속했습니다.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시험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부정행위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창의력이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는 것. 콧구멍에 종이를 숨기고 땅속에 대나무 통을 묻던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묘한 공감을 주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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