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궁궐의 괴물,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by 정보정보열매 2026. 1. 31.
반응형

조선왕조실록은 철저한 사실 기록으로 유명합니다. 사관들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적었고, 임금조차 자신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엄격한 역사서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세기 중종 시대,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1511년 5월 9일, 첫 번째 목격

사건의 시작은 중종 6년이었습니다. 그날 밤, 태조 이성계의 비 신의왕후 한씨를 모신 사당인 문소전 뒤편에서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습니다. 사당을 관리하던 종이 이를 발견하고 쫓았지만, 그 짐승은 서쪽 담을 타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짐승을 "개처럼 생긴 짐승(獸類犬)"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중종은 군사를 보내 찾게 했지만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실록은 이 일을 기록하며 "침전은 들짐승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전날 밤에는 종묘의 소나무에 불이 났고, 이날 밤에는 괴상한 짐승이 나타났으니 며칠 사이에 재변이 잇따르는 것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괴이한 일을 나라에 닥칠 불길한 징조로 해석했습니다.

1527년, 공포가 궁궐을 뒤덮다

16년이 흐른 중종 22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이해 초에는 악명 높은 "작서의 변"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사지를 자르고 입과 귀와 눈을 불로 지진 쥐의 사체를 동궁 북쪽 은행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입니다. 세자를 저주하고 해치려는 의도가 분명한 섬뜩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중종의 후궁 경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6월 17일 밤, 경복궁 군인 숙직실에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나팔을 부는 군사 한 명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가위에 눌려 기절했습니다. 동료들이 놀라 일어나 그를 구하려 할 때, 그들의 눈에 믿기 힘든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삽살개처럼 생기고 크기는 망아지만 한 것이 자신들의 방에서 서명문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군사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 방에는 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한밤중 경복궁 전체가 일대 소동에 빠졌습니다. 궐 안 여러 곳에서도 그 물체가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임금도 피했다, 궁궐 이전 소동

이 일이 대비전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현왕후는 깊이 불안해하며 어린 세자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중종에게 거처를 옮기자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중종도 세자가 걱정되어 일단 창덕궁으로 이어하겠다고 신하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홍문관에서 올린 상소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처음 본 자가 유식한 사람이 아니고 무지한 군인이었으니, 그 말의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이런 괴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임금이 심지를 굳게 정하여 동요하지 않아야 아랫사람들도 의심하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이어하신다면 백성들이 미혹되어 거짓 소문을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신하들의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괴이함이란 본래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임금이 흔들리면 온 나라가 흔들린다. 이 논쟁은 조정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1530년, 대비전을 두드린 괴물

그로부터 3년 뒤인 중종 25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번에는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 대낮에 괴물이 나타나 창벽을 마구 두드리고 잡동사니로 희롱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중종이 곁에 모시고 있지 않을 때면 못하는 짓이 없이 난동을 부렸다고 실록은 기록합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비전이 경복궁으로 이어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중종과 중궁전, 세자빈까지 함께 거처를 옮겼습니다. 세자가 가장 나중에 이어했다는 기록을 보면, 어린 세자를 지키려는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종이 죽던 날까지 이어진 괴물 소동

1532년에도 괴물 소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말처럼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궁궐을 지키던 금군들이 밤에 놀라 소동을 피웠습니다. 실록에는 이 소문을 "망령된 말"이라고 적었지만, 금군들이 그토록 경악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괴물이 중종이 세상을 떠난 날에도 나타났다는 기록입니다. 인종 1년(1545년) 7월 2일, 중종이 승하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 사이에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징을 치며 괴물을 쫓아다녔고, 그 소리가 성안을 진동했습니다. 순찰병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끝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이 괴물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34년간 조선 궁궐을 공포에 떨게 한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설명은 연산군이 키우던 동물이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궁궐 안에서 여우, 호랑이, 곰 같은 동물을 키웠고, 매와 개의 수가 수만 마리에 이르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는 혼란 속에서 이들 중 일부가 도망쳐 궁궐 한쪽에 숨어 살다가 문득 문득 사람들 눈에 띄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설명은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중종 시대는 반정으로 시작된 불안정한 정권, 끊이지 않는 당쟁, 기묘사화 같은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점철된 시기였습니다. 작서의 변처럼 세자를 저주하는 섬뜩한 사건까지 벌어지니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한 사람이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르면 다른 사람들도 동요하고, 어둠 속에서 본 무언가가 괴물로 둔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점입니다. 중종 시대로부터 약 200년 뒤인 18세기 프랑스 제보당 지역에서도 큰 개를 닮은 정체불명의 괴수가 출몰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큰 검은 개에 대한 괴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어쩌면 이는 인류 보편의 공포가 만들어낸 집단적 환영인지도 모릅니다.

혼란한 시대가 낳은 괴물

역사학자들은 괴담이 시대의 불안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중종 연간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했던, 한마디로 나라가 나라답지 못했던 극도의 혼란기였습니다. 중종 자신도 스스로의 부덕함을 탓하며 "인요물괴가 거듭 나타났다"고 한탄했을 정도입니다.

정리하자면, 중종 시대 경복궁에 나타난 괴물은 1511년부터 1545년까지 34년간 실록에 기록되었습니다. 생김새는 개를 닮았고 크기는 망아지만 했으며, 비린내를 풍겼다고 합니다. 군사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대비전까지 습격했으며, 결국 임금이 궁을 옮기는 사태까지 초래했습니다. 그 정체가 실제 동물이었든, 집단 히스테리였든, 이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속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