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새 옷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면,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건넵니다.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은 세뱃돈 봉투를 손에 쥐고 설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세뱃돈, 수백 년 이어져 온 우리 전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확인해보면 조금 다릅니다. 세뱃돈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짧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세뱃돈은 없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문헌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김매순의 <열양세시기> 등 대표적인 세시풍속 기록에 세배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정작 세뱃돈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배를 받으면 어른들은 무엇을 주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아이들에게는 술 대신 떡과 과일을 주었다고 합니다. 성균관대학교 장유승 교수는 조선시대 도덕 관념상 어른들에게 절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분석합니다. 예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에서 새해 인사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세배갑, 세뱃돈의 첫 등장
그렇다면 세뱃돈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요? 문헌상 세뱃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25년 조선 말기 문신 최영년이 펴낸 시집 <해동죽지>에 나옵니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옛 풍속에 설날 아침이면 어린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새 주머니를 차고 친척과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러면 어른들이 각각 돈을 주니 이를 세배갑이라 한다."
옛 풍속이라고 표현했으니 1925년보다 이전부터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1907년 대한매일신보 기사에 9살 아이 이용봉이 세배하고 얻은 돈을 국채보상운동 기금으로 기탁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세뱃돈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세뱃돈의 기원설 세 가지
세뱃돈이 어디서 유래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크게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안비 수고비 유래설입니다.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들은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설날이 되면 여자 노비를 곱게 단장시켜 친정에 새해 인사를 대신 보냈는데, 이를 문안비라고 불렀습니다. 인사를 받은 집에서는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차려주고 수고비를 쥐여주었습니다. <동국세시기>와 조선 영조 때 학자 이광려의 시에도 문안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수고비가 점차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으로 변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는 중국 유래설입니다. 중국에서는 11세기 송나라 때부터 압세전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압세전의 세는 잡스러운 귀신을 뜻하는데, 이를 누르는 엽전을 새해에 아이들에게 주며 나쁜 것을 물리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설날에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주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일본 유래설입니다. 일본에서도 17세기부터 도시다마라고 불리는 세뱃돈 풍습이 있었습니다.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살면서 이 문화가 전해졌다는 주장입니다. 다만 1907년 대한매일신보 기사가 발견되면서 일본 유래설은 힘을 잃었습니다.
세뱃돈, 한때는 사회 문제였다
20세기 들어 생겨난 세뱃돈 문화는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1927년 2월 6일 매일신보에는 '세배돈의 폐풍, 다른 것을 줍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는 "세배 다니는 소년소녀에게는 세배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세배를 받으면 세배돈을 주어야 하는 줄 알고 돈을 주면 어린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끼칠는지 생각지도 않고 주는 버릇이 되었다"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세뱃돈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 성장과 함께 정착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10원 정도가 보통이었지만, 물가 상승과 함께 100원, 500원으로 늘어났습니다. 1990년대에는 1만 원권 지폐가 세뱃돈의 기본이 되었고, 2009년 5만 원권이 발행되면서 세뱃돈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덕담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세배할 때 주고받는 덕담도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요즘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부자 되세요 같은 말을 많이 하지만, 옛날에는 건강이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조선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가 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새해부터는 무병장수하고 재채기 한 번도 아니 하고 숨도 무궁히 평안하여 달음질하고 날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낸다고 하니 헤아릴 수 없이 치하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덕담의 모습입니다.
다른 나라의 세뱃돈 풍습
세뱃돈은 우리나라만의 문화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도시다마라고 하여 새해 인사 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돈을 줍니다. 우리처럼 신권을 준비하는 것과 달리 작은 봉투에 돈을 접어서 넣어줍니다. 프랑스에서는 에트렌느라고 하여 돈보다는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몽골입니다. 몽골에서는 반대로 아이들이 어른에게 돈을 드립니다. 충효와 공경의 의미를 담아 부모님께 하닥이라는 비단 천에 돈을 싸서 올리면, 어른들은 선물로 보답합니다.
정리하자면, 세뱃돈은 수백 년 된 전통이 아니라 100여 년 전 형성된 비교적 새로운 문화입니다. 그 기원은 조선시대 문안비의 수고비에서 찾기도 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기원이 어디든 중요한 것은 세뱃돈에 담긴 마음입니다. 새해 첫날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건네는 따뜻한 정성, 그것이 세뱃돈의 진짜 의미일 겁니다.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선 시대 사람들은 정말 설날에 이렇게 보냈을까? (0) | 2026.01.31 |
|---|---|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궁궐의 괴물,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0) | 2026.01.31 |
| 조선시대 설날은 정말 어땠을까?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1) | 2026.01.30 |
| 조선시대 과거시험 커닝, 상상 초월이었습니다 (1) | 2026.01.30 |
| 조선시대 설날,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야광귀부터 세뱃돈까지 (1) | 202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