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인생 역전의 꿈을 안고 수십 년을 공부했던 조선시대 수험생들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했던 과거시험, 과연 공정하게 치러졌을까요?
안타깝게도,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 시험장은 수험생들의 열정보다는 온갖 부정행위와 욕망이 뒤엉킨 거대한 '난장판'으로 변해갔습니다. 대리 시험을 치는 전문 브로커에,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깡패까지 동원되었다고 하는데요. 🤔
오늘은 우리가 상상했던 선비들의 고결한 시험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의 충격적인 실태와 그 기상천외한 부정행위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

👊 시험 시작 전부터 전쟁, "명당자리를 사수하라!"
오늘날 수능 시험장은 수험번호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지만,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에는 지정 좌석이 없었습니다. 시험은 선착순이었죠. 이는 시험 시작 전부터 자리싸움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 좋은 자리가 중요했을까요?
- 시제 확인: 시험 주제인 '시제(試題)'는 시험장 중앙에 딱 한 번만 걸렸습니다. 뒤쪽이나 구석에 앉으면 시제가 잘 보이지 않아 시작부터 불리했습니다.
- 답안지 선착순 제출: 응시자가 너무 많아 감독관들이 모든 답안지를 채점하기 어려울 때는, 먼저 제출된 답안지 위주로 채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심지어 돈을 받고 자리를 맡아주거나, 싸움을 통해 자리를 뺏어주는 전문 깡패, '선접군(先接軍)'까지 고용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시험을 보기도 전에 이미 실력 외적인 요소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죠.
👥 상상을 초월하는 '커닝'의 기술
자리싸움이 끝났다고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시험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온갖 부정행위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 커닝 페이퍼: 대놓고 책을 들고 들어오거나(수종협책), 글씨를 아주 작게 써서 소매나 붓대 속에 숨겨왔습니다.
- 집단 커닝: 옆 사람의 답안지를 베끼는 '고반(顧盼)', 자신의 답안지를 보여주는 '낙지(落紙)'는 기본이었습니다. 아예 삼삼오오 모여 답을 상의하며 집단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모습은 김홍도의 그림에도 묘사될 정도였죠.
- 답안지 외부 조달: 밖에서 작성한 모범 답안을 몰래 전달받는 '외장서입(外場書入)'도 성행했습니다.
- 글씨 대필, '사수(寫手)': 과거시험은 글씨체도 중요한 평가 요소였습니다. 이 때문에 글씨를 대신 써주는 전문 대필가인 '사수'를 고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 최악의 부정행위, 전문 대리시험꾼 '거벽(巨擘)'
하지만 이 모든 부정행위를 뛰어넘는 '끝판왕'이 있었으니, 바로 다른 사람이 대신 시험을 쳐주는 '대리시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대신 쳐주는 사람을 '거벽(巨擘)'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거벽'은 학식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돈을 받고 시험을 대신 쳐주는 일이 많아지면서 점차 '대리시험꾼'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자리를 맡는 '선접군', 시험을 대신 치는 '거벽',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수'가 한 팀을 이뤄 움직이는 전문 '부정행위 기업'까지 존재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머리가 비상했던 선비들은 관리가 되어봤자 파벌 싸움에 밀려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거벽'을 직업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명 '거벽'까지 있었다고 하니, 과거시험의 공정성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난장판(亂場版)'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수라장'이라는 의미의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바로 "난리 속의 과거 시험장"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인생 역전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과거시험이 실력이 아닌 돈과 권력, 속임수로 얼룩져 갔던 모습은 씁쓸함을 남깁니다. 능력 있는 인재가 아닌, 부정한 방법으로 관리가 된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렸으니, 어쩌면 조선의 쇠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험의 공정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사회의 신뢰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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