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바닥 난방, 사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이렇게 산다는 거 아셨나요? 서양 사람들은 벽난로 앞에 모여 앉고, 일본 사람들은 코타츠 안에 다리를 넣고 지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방바닥 전체가 따끈따끈합니다. 이게 바로 온돌, 우리말로 구들입니다.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난방법, 알고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Q. 온돌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청 오래됐습니다. 두만강 하구 서포항에서 발견된 온돌 유적이 무려 5천 년 전 것이라고 합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바닥을 데워 잤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구려 시대 기록도 있습니다.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겨울에 기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때서 따뜻하게 했다고요. 다만 이때는 방 전체를 데우는 게 아니라 일부분만 데우는 쪽구들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방 전체를 덥히는 온돌은 고려 말에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온돌이라는 한자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구들은 구운 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Q. 그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다 온돌방에서 살았나요?
이게 핵심이거든요. 아닙니다. 처음에 온돌은 서민들의 문화였습니다. 양반들은 오히려 마루에서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걸 고급스럽게 여겼습니다. 온돌이 왕의 침실까지 들어가는 데 150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온돌이 전 계층으로 확산된 건 17세기입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전쟁으로 집들이 파괴되고 다시 지으면서 온돌이 널리 퍼졌습니다. 거기에 소빙기라고 불리는 이상 한파까지 겹쳤습니다.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온돌을 놓게 된 겁니다.
재미있는 건 온돌이 퍼지면서 생활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고려시대 양반들은 의자에 앉아 식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온돌이 보급되면서 바닥에 앉아 밥을 먹게 됐고, 그래서 다리가 낮은 소반이 유행하게 됩니다.
Q. 온돌의 원리가 뭔가요?
다들 아시잖아요,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온돌은 이 원리를 아주 기가 막히게 이용한 겁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뜨거운 연기가 구들장 아래로 지나갑니다. 이 길을 고래라고 부릅니다. 미로처럼 생긴 이 고래를 뜨거운 연기가 지나가면서 구들장을 덥히고, 열기를 다 전달한 연기는 굴뚝으로 빠져나갑니다. 밥 한 번 하면서 방도 덥히는, 일석이조 시스템인 겁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동시에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아궁이에서 직접 불을 떼지 않아도 구들장에 축적된 열기가 오래 유지되는 게 온돌의 장점입니다. 한 번 불을 때면 밤새 따뜻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아랫목, 윗목은 왜 생긴 건가요?
아궁이에서 가까운 쪽이 당연히 더 뜨겁겠죠. 그쪽이 아랫목입니다. 반대로 굴뚝에 가까운 쪽은 열기가 좀 식어서 덜 뜨겁습니다. 그쪽이 윗목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랫목이 윗사람 자리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따뜻한 아랫목에 앉고, 젊은 사람들은 윗목에 앉았습니다. 손님이 오면 아랫목을 내주고, 대접하려고 불을 더 때주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온돌 하나로 예의범절까지 자연스럽게 배운 셈입니다.
겨울밤에 온 가족이 아랫목에 모여 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거실 소파에 모이는 것처럼, 그때는 아랫목이 가족의 중심이었던 겁니다.
Q. 외국인들 눈에 온돌은 어떻게 보였나요?
조선 말기에 온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많습니다. 용광로에서 잠을 자는 기분이었다는 사람도 있고, 조선인들은 빵처럼 구워지는 걸 좋아한다고 쓴 사람도 있습니다.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주막에서 너무 더워서 문을 열었더니 주인이 달려와 소리를 지르며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물어간다면서요. 문을 겨우 열어도 바닥은 뜨거운데 공기는 차가워서 괴로웠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690년 네덜란드 사람 위트센은 방 밖에 아궁이를 설치하고 바닥 밑으로 연기를 보내 방을 덥히는 방식이라고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벽난로처럼 방 안에 불이 있는 게 아니라 방 밖에서 데운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Q. 온돌 때문에 생긴 문제도 있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나무입니다. 온돌을 데우려면 땔감이 엄청나게 필요합니다. 1911년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연간 7400킬로그램의 장작을 썼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도 비슷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 결과가 뭐냐면, 전국의 산이 민둥산이 됐습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산들을 보면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온돌 때문만은 아니지만 큰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홍수 피해도 심해졌습니다.
18세기 이후로는 온돌의 열효율을 높이려는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땔감을 덜 쓰면서도 방을 따뜻하게 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고래의 구조를 바꾸거나, 굴뚝의 높이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Q. 지금 우리가 쓰는 보일러도 온돌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좀 다릅니다. 전통 온돌은 뜨거운 연기로 구들장을 데웠는데, 현대 온수 보일러는 뜨거운 물이 파이프를 지나면서 바닥을 덥힙니다. 원리가 다른 겁니다.
그런데 바닥을 데워서 방 전체를 따뜻하게 한다는 개념은 똑같습니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한국 온돌을 경험하고 영감을 받아 현대식 바닥 난방을 설계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 고급 아파트에도 한국식 바닥 난방이 들어갑니다. 온돌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2008년에는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온돌 국제표준안이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ondol이라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온돌은 5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 고유의 난방법입니다. 고구려 시대 쪽구들에서 시작해 고려 말에 방 전체를 덥히는 형태로 완성됐고, 17세기에 전 계층으로 퍼졌습니다. 아랫목과 윗목이라는 공간 구분을 만들어 예의범절까지 가르쳤고, 좌식 생활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땔감 문제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로 방 전체를 골고루 덥히는 과학적 원리는 지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따뜻한 바닥에 발을 대고 있으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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