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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설날 풍습,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by 정보정보열매 202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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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은 일본에서 건너온 풍습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꽤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설날 세배와 세뱃돈은 옛날부터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하시죠. 그런데 실제로 확인해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조선시대 설날 풍습은 지금 우리가 보내는 설 연휴와 여러 모로 달랐고, 세뱃돈의 기원 역시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른 맥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설을 보냈는지 팩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신라 때부터 있었던 설, 그러나 형태는 달랐다

설날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에서는 서기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원단(설날), 상원(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중구, 팔관, 동지 등 9대 속절(명절)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설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지금 느끼는 것과 달랐습니다. 설은 '설다', '낯설다', '삼가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새해 첫날을 맞아 조심하고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죠. 지금처럼 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내는 날이라기보다는, 한 해의 시작을 삼가며 맞이하는 날에 가까웠습니다.

세배의 원형, 절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가족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세배의 기원은 가정이 아니라 절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문화의 중심이었고, 해마다 정월이 되면 절에서 '통알'이라는 신년 행사를 가졌습니다.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여 불교 예식을 치른 후 신도들이 스님에게 세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유교 문화가 정착되고 세배의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절에서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문화가 양반 사대부에게 문안을 드리는 문화로 전환되었고, 이것이 다시 가족이나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문화로 퍼져나갔습니다. 세배의 순서도 엄격했는데, 차례를 지낸 후 조부모, 부모, 백숙부모 순서대로 인사를 드리고, 집안의 세배가 끝난 후에야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갔습니다.

세뱃돈은 일본 풍습이 아니다

세뱃돈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풍습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1910년 경술국치 이전인 대한매일신보 광무 11년(1907년) 4월 14일자 기사에 이미 세뱃돈 관련 기록이 등장합니다. 아홉 살 아이 이용봉이 세배하고 얻은 돈을 국채보상운동 기금으로 기탁했다는 내용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문안비' 풍습에서 세뱃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고, 시집간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명절에도 친정에 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양반가 부녀자들은 집안의 여종을 대신 친정에 보내 문안을 여쭙게 했는데, 이를 문안비라고 불렀습니다.

문안비가 친정에서 세배를 올리면 친정에서는 그 여종에게 세배상을 차려주고 세배삯을 쥐여주었습니다. 이 풍습은 유득공의 경도잡지(18세기 후반)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세뱃돈의 원형은 본인이 아닌 대리인에게 주는 수고비 성격이 강했던 겁니다.

1925년 발간된 해동죽지에는 좀 더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기록이 나옵니다. "옛 풍속에 설날 아침이면 어린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새 주머니를 차고 친척과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러면 어른들이 각각 돈을 주니 이를 세배갑이라 한다." 여기서 '옛 풍속'이라 했으니 192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떡국의 숨은 의미

설날 아침 떡국을 먹는 풍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가 나이를 묻는 말이 된 것은 해마다 설에 떡국을 먹으며 한 살씩 나이를 먹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떡국의 형태에도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흰쌀로 만든 흰 떡을 사용한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을 상징하기 위함이었고, 떡을 둥글게 써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했습니다. 태양숭배 사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죠.

지역에 따라 떡국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도 달랐습니다. 경기도에서는 떡국과 만둣국을, 강원도에서는 떡국과 만둣국 그리고 밥을, 충청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에서는 떡국을,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에서는 밥을 올렸다고 합니다.

설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밤새 불을 환하게 켜놓고 새해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수세라고 불렀는데, 한 해를 지키면서 보낸다는 의미였습니다.

설날 새벽에는 청참이라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서 맨 처음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쳐보는 것인데, 까치 소리가 들리면 길조,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흉조로 여겼습니다. 까치 소리를 듣기 위해 아예 집 근처에 까치가 집을 짓도록 담장에 죽나무를 심어놓는 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설날 풍습들

복조리를 걸어두는 풍습도 조선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인데, 설날 새벽이나 섣달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고,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미리 사서 방 한쪽에 걸어두고 하나씩 쓰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야광귀 쫓기 풍습입니다. 설날 밤에 야광이라는 귀신이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귀신에게 신발을 빼앗기면 그해 운이 나쁘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발을 안에 들여놓거나 체를 대문에 걸어두었습니다. 귀신이 촘촘한 체 구멍을 세다가 새벽을 맞아 물러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덕담도 지금과 달랐다

요즘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부자 되세요"가 대표적인 덕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건강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조선 18대 임금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가 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새해부터는 무병장수하고 재채기 한 번도 아니 하고 푸르던 것도 없고 숨도 무궁히 평안하여 달음질하고 날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낸다고 하니 헤아릴 수 없이 치하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효종의 비 인선왕후도 딸에게 "마마를 잘 치렀고 80세까지 산다고 하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으리"라고 덕담했습니다. 평균 수명이 짧고 질병이 많던 시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음력설이 사라질 뻔한 역사

지금은 당연하게 쇠는 음력설이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1896년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공식적인 새해는 양력 1월 1일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구정'이라 부르며 탄압했습니다.

광복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이중과세'라는 낭비와 국제화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양력설만 공휴일로 지정하고, 음력설을 지내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음력설 추방 캠페인까지 벌였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지켰습니다. 1981년 조사에 따르면 음력설을 지내는 국민이 전체의 81.8퍼센트에 달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에 비로소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전후 하루씩 3일이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음력설이 양력설과 동등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불과 36년 전의 일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세뱃돈은 일본에서 건너온 풍습이 아니라 조선시대 문안비 풍습에서 유래했습니다. 1907년 기록에도 이미 세뱃돈이 등장합니다. 둘째, 세배는 원래 절에서 스님에게 드리는 인사에서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유교적 가족 문화로 변화했습니다. 셋째, 설날은 즐겁게 보내는 날이라기보다 조심하고 삼가며 맞이하는 날이었고, 다양한 액막이 풍습이 있었습니다. 넷째, 덕담의 내용도 재물보다는 건강을 비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다섯째, 지금의 설 연휴 제도는 1989년에야 정착된 비교적 최근의 것입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조선시대 설 풍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형태는 바뀌어도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올 설에는 세뱃돈을 주고받으며 그 오랜 역사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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