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21대 왕 영조가 신하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왕이 왜 게장 먹은 일을 해명해야 했을까요? 여기에는 조선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의문사가 얽혀 있습니다. 영조의 이복형이자 20대 왕이었던 경종이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급사했고, 그 게장을 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영조였다는 겁니다. 과연 영조는 왕위를 위해 형을 독살한 것일까요?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썼을까요? 실록의 기록과 당대의 정황을 바탕으로 이 300년 된 미스터리를 추적해 봅니다.
경종의 마지막 날, 실록은 무엇을 기록했나
1724년 음력 8월 25일, 경종이 갑자기 승하했습니다. 재위 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경종은 승하 직전 게장과 생감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제였던 연잉군, 훗날의 영조가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삼과 부자를 처방하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게장과 감을 진상했는지가 실록에서 누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에게 올리는 음식의 출처를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경종의 마지막 식사에 대해서만 그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이 누락 자체가 당시에도 뭔가 숨길 것이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조 치세에 역모 사건으로 잡힌 사람들이 독살설 관련 발언을 했을 때, 영조는 사관들에게 "음참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이어서 입에 담을 수가 없으니, 좌우의 사관은 쓰지 말아야 한다"며 기록을 압박했습니다. 정말로 떳떳한 일이었다면 왜 기록을 막았을까요?
독살설의 근거, 무엇이 의심스러웠나
독살설을 주장하는 쪽의 논거는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게장과 생감의 조합입니다. 한의학에서 게와 감은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상극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경종은 당시 비만과 섭식장애를 앓고 있었고,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자에게 상극 음식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의도적이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둘째, 영조의 약 처방 개입입니다. 경종이 위독해지자 어의 이공윤은 특정 약을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영조가 이 처방을 뒤집고 인삼과 부자를 쓰게 했습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삼과 부자는 양기를 보하는 약인데, 경종의 증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영조가 처방한 약을 먹고 경종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의혹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신임사화와의 연관성입니다. 경종 즉위 초기에 노론 세력이 경종을 압박해 영조를 세제로 책봉하게 했고, 이 과정에서 노론 일부가 경종 독살 계획을 꾸몄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삼수의 옥 사건으로 알려진 이 역모에 영조의 측근들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영조가 게장을 올리고 약을 처방했으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학계 다수는 경종 독살설에 회의적입니다. 반론의 논거도 상당합니다.
첫째, 경종의 건강 상태입니다. 경종은 즉위 전부터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식사를 거부하는 증상이 자주 나타났고, 비만과 섭식장애를 달고 살았습니다. 학계에서는 영조가 개입을 했든 안 했든 경종이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추측합니다. 이미 가망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는 겁니다.
둘째, 영조의 정치적 이익 여부입니다. 당시 조정은 소론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경종이 살아 있는 동안 영조를 보호해 준 것도 경종이었습니다. 자기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는 형을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독살을 시도할 정도로 영조가 어리석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셋째, 약 처방의 해석입니다. 세종도 아우 성녕대군이 위독할 때 의서를 읽으며 약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족이 가족의 치료에 관여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의의 처방을 뒤집고 인삼차를 처방한 것은 오히려 경종의 회복을 바랐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당대의 반응은 어땠나
진위 여부와 별개로 독살설은 당대부터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 의혹은 영조 치세 내내 그를 괴롭혔습니다. 마치 효종에게 민회빈 강씨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영조에게는 경종 독살설이 평생의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경종 승하 당시 입시했던 단의왕후의 동생 심유현은 멀쩡하던 임금이 갑자기 사망한 것에 의구심을 품고 이를 주변에 퍼뜨렸습니다. 영조는 이천해라는 사람이 독살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을 때 극도로 분노하며 사관들에게 기록하지 말 것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직접적인 기록은 그날 기사에 남지 못했지만, 사관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의 발언을 기록하며 슬쩍 인용함으로써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영조 치세 동안 여러 역모 사건에서 경종 독살설이 계속 언급되었습니다. 이인좌의 난, 나주벽서사건 등에서 반란 세력은 "영조가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영조는 이런 공격에 시달리며 평생 경종의 죽음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게장을 먹지 않겠다는 맹세
영조가 "신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한 것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갑진년은 경종이 승하한 1724년입니다. 영조는 그날 이후 평생 게장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선언한 겁니다.
이 발언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자신이 게장을 올린 것이 형의 죽음과 무관하다는 항변입니다. 만약 독살 의도가 있었다면 굳이 게장을 끊을 이유가 없었겠죠. 다른 하나는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의 표현입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자신이 올린 음식을 먹고 형이 죽었다는 사실이 평생 그를 괴롭혔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조가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스스로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의학을 안다고 자부하던 세제가 위독한 왕에게 의학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 음식을 올리고 어의의 처방을 뒤집었다면, 그것이 선의였든 악의였든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현대 학계의 평가
현재 학계의 주류 견해는 독살설에 부정적입니다. 경종이 이미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안고 있었고,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게장과 감의 조합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학적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300년 전의 일이고, 당시 기록 자체가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사관들에게 기록을 막으라고 압박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떳떳한 행위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확실한 것은 영조 본인이 이 의혹 때문에 평생 고통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트라우마가 훗날 아들 사도세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경종 독살의 원흉이라는 의심을 받던 과거가 영조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임오화변이라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입니다.
미스터리로 남은 이유
경종 독살설이 300년 넘게 미스터리로 남은 이유는 몇 가지입니다. 첫째, 결정적 증거가 없습니다. 둘째, 기록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당대부터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되어 객관적 판단이 흐려졌습니다.
역사학에서 독살설을 검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왕릉을 발굴해 시신을 부검하는 것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석회를 사용한 회곽묘를 사용했기 때문에 시신이 미라 형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왕릉 발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설령 한다 해도 300년이 지난 시신에서 독극물 성분을 검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경종 독살설은 영조가 게장과 생감을 올리고 어의의 처방을 뒤집어 형을 죽였다는 의혹입니다. 당대부터 광범위하게 퍼졌고 영조 치세 내내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독살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는 상극 음식의 진상, 어의 처방 번복, 노론 측근들의 역모 연루, 기록의 의도적 누락 등이 있습니다. 반면 경종의 기존 건강 악화, 영조의 정치적 이익 부재, 왕족의 치료 개입 관례 등이 반론으로 제시됩니다.
현재 학계 다수는 독살설에 회의적이지만, 완전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의혹이 영조 개인에게 평생의 상처가 되었고, 조선 후기 정치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점입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경종의 죽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암행어사 출두요! 드라마에서 본 그 장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1) | 2026.01.26 |
|---|---|
| 타이타닉, 빙산 때문에 침몰했다고요?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0) | 2026.01.26 |
| 조선시대 설날 풍습,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1) | 2026.01.25 |
| 조선시대 사람들은 영하 40도 추위를 어떻게 버텼을까 (0) | 2026.01.25 |
| 조선의 여의사, 왜 천민이어야 했을까 (0) |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