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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설날,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야광귀부터 세뱃돈까지

by 정보정보열매 202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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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어느 설날 밤, 한양의 한 양반집 아이가 마루 끝에 신발을 벗어두려다 어머니에게 혼이 났습니다. 오늘 밤 야광귀가 내려온다고요.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다가 발에 맞는 걸 찾으면 그대로 신고 가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얼른 신발을 방 안에 숨겼고, 대문 위에는 체가 걸렸습니다. 귀신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 밤을 새우다 신발은 구경도 못하고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설날 풍습과 조선시대의 설날은 같은 듯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세뱃돈도, 세배도, 떡국도 있었지만 그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야광귀, 설날 밤에 찾아오는 신발 도둑

조선시대 설날에는 귀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야광귀라 불리는 이 귀신은 정월 초하룻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했습니다. 발에 맞는 신발을 찾으면 그대로 신고 사라지는데,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내내 운수가 좋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광이라는 이름의 귀신이 설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두루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으면 곧바로 신고 가버린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야광귀를 막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체를 마루 벽에 달아놓거나 대문 위에 걸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야광귀가 와도 체의 구멍 수를 세느라 정신이 팔려서 신발을 신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닭이 울면 그냥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신발을 숨기고 잠들었습니다.

경도잡지에서는 이 야광귀 이야기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고 퍼뜨린 이야기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차례와 세배를 다니느라 피곤한 아이들이 밤새 놀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려는 지혜였던 셈입니다.

눈썹이 하얗게 센다, 섣달그믐 밤새우기

설날 전날인 섣달그믐에도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날 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있어서,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밤을 새웠습니다. 방은 물론이고 마루, 부엌, 다락, 심지어 뒷간과 외양간까지 환하게 불을 켰습니다.

이 풍습은 도교의 경신수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사람 몸속에 삼시충이라는 벌레가 살고 있는데, 사람이 잠든 사이에 빠져나가 옥황상제에게 지난 60일간의 죄를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면 삼시충이 나갈 수 없으니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서 졸음을 참으며 버텼습니다. 그러다 결국 잠이 들면 장난기 많은 어른들이 자는 아이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놓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 아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며 한바탕 웃음이 터졌을 것입니다.

복조리, 새해 복을 담는 그릇

설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집집마다 복조리 장수의 외침이 울렸습니다. 조리는 쌀을 씻어 돌이나 쭉정이를 골라내는 도구입니다. 설날이면 이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었는데, 조리로 쌀을 이듯이 그해의 행운과 복을 일어 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복조리는 반드시 새해 첫날, 그것도 이른 새벽에 사야 효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조리 장수들은 섣달그믐 밤부터 밤새도록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심지어 1년 동안 쓸 조리를 한꺼번에 사서 대청 한쪽에 걸어두고 하나씩 꺼내 쓰면 1년 내내 복이 들어온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병이 물러간다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풍습이 있습니다.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나쁜 병이 물러가고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몸의 일부이니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년 내내 모아두었다가 새해 첫날 불에 태워 하늘로 보내는 의식을 치른 것입니다.

세뱃돈은 원래 돈이 아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설날은 세뱃돈 받는 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세뱃돈을 현금으로 주는 풍습은 생각보다 역사가 짧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세배 풍습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절에서 스님에게 세배를 드리던 문화가 조선시대에는 양반 사대부에게 세배를 드리는 문화로 바뀌었고, 점차 가족이나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세배를 받으면 어른들은 떡이나 과일,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돈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여성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하인을 보내 일가친척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문안비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인사를 받는 집에서는 그 하인에게 세배삯이라 하여 약간의 수고비를 주었는데, 이것이 세뱃돈의 원형으로 보기도 합니다.

현금으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 이후입니다. 한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음식을 대접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돈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10원 정도를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100원, 500원, 1000원으로 늘어났습니다. 2009년에 5만원권이 발행되면서 세뱃돈 액수는 또 한 번 크게 뛰었습니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설날에는 반드시 떡국을 먹었습니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새해 첫날 차례상에 올리는 제물이기도 했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먹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흰 떡국은 새해의 깨끗함과 신성함을 상징했고, 동그란 떡 모양은 해를 닮아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지역마다 떡국의 형태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경기도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어 만둣국을 끓이기도 했고, 충청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에서는 떡국을,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에서는 밥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설빔, 새해 새 옷으로 새 출발

설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새 옷을 입었습니다. 이 새 옷을 설빔 또는 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설빔은 섣달그믐 이전에 미리 마련해두었다가 설날 아침에 갈아입었고, 대체로 정월 대보름까지 입었습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은 단순히 치장이 아니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심신을 바로 하고 새출발을 다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말끔히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경건한 마음으로 세배를 올리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덕담도 지금과 달랐다

세배를 하면서 주고받는 덕담도 예전과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요즘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부자 되세요 같은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건강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조선 18대 임금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가 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새해부터는 무병장수하고 재채기 한 번도 아니 하고 푸르던 것도 없고 숨도 무궁히 평안하여 달음질하고 날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낸다고 하니 헤아릴 수 없이 치하한다고요.

재채기 한 번 안 하고, 멍 하나 없이, 숨도 편안하게 쉬며 뛰어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돈이나 성공을 기원하기보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던 시대의 덕담이었습니다.

세배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다녔다

조선시대에는 집안에서 세배를 마치면 아침 식사 후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습니다. 요즘처럼 핵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배를 드릴 어른이 많았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7,80년대까지만 해도 이웃집에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은 옆집과의 교류 자체가 줄어들어서 가족 간에나 하는 풍습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마을 전체가 설날에 서로를 찾아다녔습니다.

세배를 받은 집에서는 어른에게는 술과 밥을, 아이에게는 과일과 떡을 대접하며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세배를 드리면 떡국과 술상을 대접하기도 했고, 차례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먹거리를 돌아가는 길에 싸서 들려보내기도 했습니다.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마친 후에는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설날을 즐겼습니다.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연날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연에 액이라는 글자를 써서 하늘로 날려 보내면 그해의 나쁜 기운을 연이 모두 가지고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연줄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내는 것으로 액운을 떨쳐버리려 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시대 설날은 지금과 같은 듯 달랐습니다. 세배와 떡국, 새 옷 입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야광귀를 쫓기 위해 체를 걸어두고 신발을 숨기던 풍습은 사라졌습니다. 섣달그믐 밤을 새우며 눈썹이 세지 않기를 바라던 아이들의 모습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세뱃돈도 원래는 떡과 과일이었고, 덕담도 부자 되라는 말보다 건강하라는 말이 먼저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풍습의 형태도 바뀌었지만, 새해 첫날 가족과 이웃이 모여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만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올 설날에는 세뱃돈 액수보다 덕담 한마디에 더 정성을 담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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