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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커닝이 있었을까? 상상초월 부정행위 총정리

by 정보정보열매 2025.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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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커닝이 있었을까? 상상초월 부정행위 총정리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커닝하다 걸리면 큰일 나잖아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있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것도 지금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기발하고 조직적이었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충격적인' 커닝 수법을 알아볼게요.

콧구멍에 커닝페이퍼를 숨겼다고?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가장 유명한 부정행위 중 하나가 '의영고'예요. 콧구멍 속에 커닝 종이를 숨기는 방법이었죠. 또 '협서'라고 해서 붓대 끝에 아주 작은 종이를 숨기는 수법도 있었어요.

커닝페이퍼를 종이로 만든 속옷에 써서 입거나 아주 작은 책을 만들어 옷 속에 숨겨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기발하죠?

땅속으로 노끈을 연결한 대형 부정행위

개인 수준을 넘어선 조직적 부정행위도 있었어요. 1705년 숙종 31년에는 성균관 과거시험장에서 땅속으로 연결된 노끈이 발견됐는데요. 누군가 긴 노끈을 이은 대나무 통을 묻고 비늘처럼 죽 이어 구멍을 뚫은 뒤 기와로 덮어 은폐한 거예요. 이 노끈은 명륜당 뒤 산쪽에서 성균관 담장 밑을 통과해 시험장 안으로 이어져 있었고, 조사 결과 이런 노끈이 여러 개 발견됐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답니다.

6인조 '접'이라는 조직적 부정행위팀

조선 후기에는 '접'이라고 불리는 부정행위 조직이 있었어요. 시험장에 좋은 자리를 먼저 잡아주는 '선접군', 실제로 문제를 푸는 '거벽',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수',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거자'까지 역할이 나뉘어 있었죠.

이들은 과거시험장 밖에서 새벽부터 등불을 밝히고 기다렸다가 궐문이 열리면 우산대와 말뚝, 막대기를 휘두르며 달려가 '내 자리!'라고 맡아놨어요.

권력형 부정행위는 더 심각했다

사실 개인이 저지르는 부정행위보다 조직적으로 행해지던 부정이 더 큰 문제였어요. 응시자가 권력층과 결탁하거나 시험관과 짜고 치는 일이 많았거든요. 1610년 광해군 때 시행된 문과 별시에서는 정권 실세였던 이이첨의 사돈 등 시험관 친인척들이 대부분 합격했어요. 당시 사람들이 이때의 합격자 명단을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방목'이라고 비꼬았다고 해요.

부정행위 처벌은 어땠을까?

세종 29년에는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됐는데요. 곤장 100대와 도형 3년을 집행했고, 시험관 중 문제를 누설한 사람은 영구히 관리로 임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또한 시험장에는 '금란관'이라는 감독관이 있어서 부정행위 유형별로 열 개의 도장을 준비해뒀다가 커닝이 발생하면 해당 도장을 시험지에 찍었어요. 예를 들어 남의 것을 훔쳐보려고 고개를 움직이면 '고반'이라는 도장이, 옆사람이 듣게끔 중얼거리면 '음아'라는 도장이 찍혔답니다.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뇌물과 정실, 문벌, 당파에 따라 합격이 결정되면서 과거제도는 극도로 문란해졌고, 결국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됐답니다. 공정한 시험의 중요성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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