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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냉장고 없던 조선시대, 한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었던 비밀이 있습니다

by 정보정보열매 2025.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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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없던 조선시대, 한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었던 비밀이 있습니다

 

요즘은 냉장고 문만 열면 얼음이 나오죠.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에 얼음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조상들은 1,500년 전부터 한겨울 얼음을 저장했다가 한여름에 꺼내 쓰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빙고, 얼음 창고의 이야기예요.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얼음 저장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얼음을 저장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6년인 505년에 왕이 얼음을 저장하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삼국유사에는 더 이전인 유리왕 시대에 쟁기와 보습을 만들고 얼음을 저장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신라에는 아예 빙고전이라는 관청이 있었어요. 얼음 창고를 전담으로 관리하는 국가 기관이었던 거죠. 백제 유적에서도 빙고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무령왕비의 빈전 터로 알려진 공주 정지산 유적과 부여 구드래 일원에서 백제 시대 빙고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조선의 얼음은 국가가 관리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얼음 관리는 더욱 체계화됩니다. 태조 이성계는 1396년 한강 가에 두 개의 빙고를 설치했어요. 둔지산 밑에 서빙고를, 두모포에 동빙고를 두었죠. 여기에 궁궐 안에 내빙고 두 곳까지, 한성에만 총 네 곳의 국가 빙고가 운영되었습니다.

각 빙고는 용도가 달랐어요. 동빙고는 종묘와 사직의 제사에 쓸 얼음을 보관하는 격이 높은 창고였고, 서빙고는 왕실과 고위 관리들에게 나눠줄 얼음을 저장했습니다. 내빙고는 순전히 궁중에서만 쓰는 얼음 창고였죠. 경국대전에 얼음 공급 규정이 따로 명시될 정도로 얼음의 관리와 배분은 중요한 국가 업무였습니다.

서빙고에만 13만 정, 어마어마한 얼음의 양

조선시대 빙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동빙고에는 제사용 얼음 1만 2천여 정을, 서빙고에는 무려 13만 4천여 정을 저장했습니다. 얼음 한 정의 무게가 약 18.75kg이니까, 서빙고에만 2,500톤이 넘는 얼음이 보관된 셈이에요.

얼음은 음력 12월이나 1월 새벽 2시쯤 한강의 저자도 부근에서 채취했어요. 길이 45cm, 너비 30cm, 두께 21cm 크기로 잘라서 세 덩어리씩 묶어 지게로 옮겼습니다. 이 고된 작업을 벌빙이라고 불렀는데, 꽁꽁 언 강 위에서 얼음을 자르다 빠져 죽거나 동상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빙고청상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빙고 때문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다는 뜻이죠.

석빙고의 놀라운 과학 원리

처음에 빙고는 나무나 짚으로 만든 목빙고와 초개빙고였어요. 돌로 만든 석빙고는 18세기에 등장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7기의 석빙고는 모두 조선 후기에 축조된 것입니다.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에 6기, 북한 해주에 1기가 있어요.

석빙고가 냉장고 없이 얼음을 보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학적인 설계에 있었습니다. 우선 반지하 구조로 지어 땅의 냉기를 활용했어요. 천장은 아치형 홍예 구조로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뒤 잔디를 심어 태양 복사열을 차단했죠.

바닥은 5도 정도 경사지게 만들어서 얼음이 녹은 물이 자연스럽게 배수구로 흘러나가게 했어요. 고인 물이 있으면 얼음이 더 빨리 녹거든요. 천장에는 환기 구멍을 뚫었는데, 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구조라 더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얼음 사이사이에 왕겨와 볏짚을 채워 단열 효과를 높이기도 했고요.

왕이 내리는 얼음, 빙표의 특권

여름철 얼음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경국대전에 따르면 얼음을 받을 수 있는 대상과 기간, 수량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종친, 문무당상관, 70세 이상 관리, 심지어 활인서의 환자와 의금부·전옥서의 죄수에게도 얼음이 지급되었어요.

왕은 복날이 되면 빙표라는 얼음 쿠폰을 총신들에게 하사했습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권 중의 특권이었죠. 그런데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최초로 개인 빙고인 사빙고를 양화도에 만들면서 얼음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사설 빙고가 크게 늘어났고, 조선 후기가 되면 사빙고의 저장량이 관영 빙고의 15배에서 25배에 달했다고 해요.

19세기 서울 사람들은 1인당 70~100kg의 얼음을 소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얼음 사용량이 문명의 척도로 여겨졌던 것을 감안하면, 서울의 문명 수준은 세계 최고였던 셈이죠.

지금은 냉장고 버튼 하나로 얼음이 나오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해서 한여름에도 시원한 얼음을 즐겼습니다. 1,500년 전부터 이어진 장빙 기술,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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