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친구나 가족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장난스럽게 쓰는 이 표현,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바로 우리나라 대표 전래동화 '해님 달님'에서 나온 말이에요.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서 들었던 이 이야기, 오늘 다시 한번 떠올려 볼까요?
옛날 옛적 깊은 산속에
옛날 옛적 깊은 산속에 가난하지만 사이좋은 오누이와 홀어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혼자 장터에 떡을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어요. 장터까지는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하는 먼 길이었죠.
어느 날 어머니가 장터에 떡을 팔러 가게 됐어요. 어린 아이들만 두고 가려니 걱정이 되어서 신신당부했어요. "아무한테나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져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오누이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냈어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날 밤, 장터에서 떡을 팔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는 첫 번째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났어요.
호랑이가 길을 막아서며 말했어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무서워서 떡을 하나 던져줬어요. 호랑이는 떡을 받아먹고 물러났지만, 두 번째 고개에서 또 나타났어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또 떡을 던져줬어요. 세 번째 고개, 네 번째 고개... 고개마다 호랑이가 나타났고, 결국 떡이 다 떨어지고 말았어요.
떡이 없어지자 호랑이는 옷을 달라고 했어요. 어머니는 저고리를 벗어주고, 치마를 벗어주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그리고 호랑이는 어머니까지 잡아먹어 버렸어요.
어머니인 척 문을 두드리는 호랑이
배가 차지 않은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머리수건을 쓴 채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갔어요.
"얘들아, 엄마 왔다. 문 열어라."
오빠가 물었어요. "우리 엄마 목소리가 아닌데요?"
호랑이가 대답했어요. "떡을 팔러 다니느라 목이 쉬었단다."
동생이 말했어요. "그럼 손을 보여주세요."
호랑이가 문틈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털이 북실북실했어요.
"우리 엄마 손이 아니에요!"
호랑이는 부엌에서 참기름을 찾아 손에 바르고 밀가루를 묻혀서 다시 보여줬어요. 이번에는 하얗고 미끈미끈해 보였죠.
동생이 문을 열려고 하자 오빠가 말렸어요. 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는 젖먹이 동생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는 말에 문을 열어주게 돼요.
결국 호랑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오누이는 호랑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뒷문으로 도망쳤어요.
나무 위의 오누이
오누이는 집 뒤에 있는 큰 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호랑이가 쫓아와서 물었어요.
"얘들아, 어떻게 나무 위로 올라갔니?"
순진한 동생이 대답하려 하자 오빠가 얼른 말했어요. "손에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왔어요!"
호랑이는 참기름을 손에 잔뜩 바르고 나무를 오르려 했지만, 미끄러워서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자꾸 미끄러지기만 했죠.
화가 난 호랑이가 다시 물었어요. "정말로 참기름 바르고 올라간 거야?"
동생이 그만 진실을 말해버렸어요. "도끼로 나무에 홈을 파고 올라왔어요!"
호랑이는 도끼를 찾아와서 나무에 홈을 파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오누이는 점점 위로 올라갔지만,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절체절명의 순간, 오누이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빌었어요.
"하느님, 저희를 살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러자 정말로 하늘에서 튼튼하고 새하얀 동아줄이 내려왔어요. 오누이는 동아줄을 꼭 잡고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이를 본 호랑이도 똑같이 빌었어요. "하느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호랑이에게도 동아줄이 내려왔어요. 호랑이는 좋아라 하며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죠.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던 중, 뚝! 줄이 끊어져 버렸어요. 호랑이에게 내려온 건 썩은 동아줄이었거든요.
호랑이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어요. 하필이면 수수밭에 떨어졌는데, 수숫대에 찔려 죽고 말았어요. 호랑이의 피가 수숫대에 묻었고, 그래서 수수가 붉은색이 됐다고 해요.
해가 된 누이, 달이 된 오빠
하늘나라에 올라간 오누이는 하느님을 만났어요. 하느님은 오누이에게 해와 달을 맡기셨어요.
처음에 오빠가 해가 되고 여동생이 달이 됐어요. 그런데 여동생이 밤이 무섭다고 했어요. 캄캄한 밤에 혼자 떠 있으려니 너무 무서웠던 거예요.
착한 오빠는 동생과 바꿔줬어요. 그래서 오빠는 달이 되고 여동생은 해가 됐어요.
해가 된 여동생은 낮에 사람들이 자꾸 자기 얼굴을 올려다보는 게 부끄러웠어요. 수줍음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똑바로 볼 수 없게 눈부신 빛을 내리쬐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태양을 보면 눈이 부신 거라고 해요.
어떤 이야기에서는 달이 된 오빠가 밤마다 외로워서 달빛이 희미해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한다고도 해요. 그래서 초승달에서 보름달, 그믐달로 달이 차고 기우는 거래요.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에요. 원래는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는 우리 민족의 기원 신화였던 것으로 추정돼요. 시간이 흐르면서 격이 내려가 민담이 됐고, 지금은 전래동화로 전해지고 있죠.
이 이야기에는 세 가지 특성이 모두 담겨 있어요. 해와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적 특성, 수수가 붉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전설적 특성, 호랑이와 오누이가 쫓고 쫓기는 흥미로운 민담적 특성까지요.
형제간의 유대와 협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가족의 결속력을 중요시했던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을 보여줘요. 호랑이라는 자연의 위협 앞에서 지혜로 대응하는 모습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던 선조들의 생존 지혜를 담고 있고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 구조도 의미심장해요. 서양 신화에서는 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하향식 서사가 많은 반면, 이 이야기는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상향식 서사예요. 우리 민족의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에요.
세계 곳곳의 비슷한 이야기
재미있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있어요.
유럽의 민담에서는 이리와 염소 사이의 갈등으로 전개되는 동물 이야기가 있어요. 일본에서는 가해자가 악마이고 아이들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중국에서는 늑대가 하늘로 오르다 떨어진 곳에서 배추가 나왔고, 아이들이 그 배추를 팔아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대만에서는 호랑이가 할머니로 변신해 남매를 해치려 하지만 남매가 꾀를 써서 호랑이를 물리친다고 해요.
사람이 해와 달이 되는 신화적 서사는 베링 해협의 이누이트족, 만주족의 일월 기원 신화, 루마니아의 구전 서사시에서도 나타나요. 멀리 떨어진 민족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죠.
우리에게 남긴 표현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표현들이 지금도 쓰이고 있어요.
"○○ 주면 안 잡아먹지~!"는 친한 사람에게 뭔가를 장난스럽게 요구할 때 쓰는 표현이 됐어요. 원래는 무서운 상황에서 나온 말인데, 지금은 귀엽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바뀌었죠.
"썩은 동아줄"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나왔어요. 믿지 말아야 할 것, 의지했다가는 큰일 날 것을 가리킬 때 쓰여요.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파벌을 두고 이 표현을 쓰기도 해요.
다양한 버전들
이 이야기는 지역마다, 전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요.
어머니의 직업이 떡장사가 아니라 부잣집에서 품일을 하고 온 것으로 나오기도 해요. 어머니가 가진 음식이 떡이 아니라 전, 생선, 고기인 버전도 있고요.
오누이가 오빠와 여동생이 아니라 누나와 남동생인 버전도 있어요. 북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누나와 남동생으로 바뀌어 있대요.
호랑이가 떨어져 죽는 장면을 피하는 아동용 버전에서는 호랑이가 수숫대에 엉덩이를 찔려 아파하며 도망간다고 순화되기도 해요.
1922년 잡지 《개벽》에 주요섭이 기록한 최초의 문헌에서는 오빠가 달, 여동생이 해가 됐다고 나와요. 이게 가장 메이저한 버전이에요.
어릴 때 들으면 무섭고 가슴 졸이던 이야기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느껴지지 않나요? 어머니가 잡아먹히는 장면은 여전히 슬프지만, 오누이가 하늘의 해와 달이 되어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는 결말은 어딘가 뭉클하기도 해요. 오늘 밤 달이 뜨면, 저 달이 된 오빠가 아직도 여동생인 해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어요.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흥부와 놀부, 400년 전 조상들이 남긴 '나눔'의 메시지 (1) | 2025.12.23 |
|---|---|
| 흥부와 놀부 이야기, 줄거리부터 숨겨진 의미까지 제대로 알려드려요 (1) | 2025.12.21 |
| 흥부와 놀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 담긴 권선징악의 교훈 (0) | 2025.12.19 |
|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의 숨은 의미와 교훈 (0) | 2025.12.18 |
| 새해 아침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0) | 2025.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