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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조선시대 사약의 비밀, 임금이 내리는 독약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by 정보정보열매 2026.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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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죄인은 사약을 받으라!" 금부도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외치면, 죄인은 하얀 사발에 담긴 검붉은 액체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 마십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를 토하며 쓰러지죠.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지 않으셨나요? 저 사약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걸까요? 오늘은 조선시대 사약의 비밀에 대해 파헤쳐보겠습니다.

사약, 죽을 사가 아닌 하사할 사

먼저 사약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약의 사는 죽을 사(死)가 아닌 하사할 사(賜)를 씁니다. 임금이 내려주는 약이라는 뜻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사약으로 죽는 것은 나름대로 예우를 갖춘 죽음이었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큰 수치로 알았기 때문에 참수형이나 교수형과 달리 사대부에게는 신체를 보전할 수 있도록 독약으로 죽는 은전을 주었습니다. 칼에 목이 잘리거나 밧줄에 목이 졸리는 것보다 독약을 마시고 죽는 것이 그나마 품위 있는 죽음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약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저항하지 않고 임금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 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제조법

그렇다면 사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놀랍게도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 사약의 정확한 제조법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약의 제조는 내의원에서 담당했으나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에 성분을 확실하게 밝혀주는 문헌 기록이 없는 터라 현재까지도 정확한 제조법은 전해진 게 없습니다.

왜 비밀로 했을까요? 사약 제조법이 널리 알려지면 암살에 악용될 수 있고, 사약을 받은 사람이 미리 해독제를 준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추정되는 사약의 재료들

정확한 제조법은 알 수 없지만, 여러 기록과 연구를 통해 사약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료들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약을 먹으면 온 몸에 열이 나서 죽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열을 내는 성질을 가진 부자 계열의 약재를 넣었을 거라 추측하는 일이 많습니다. 부자는 투구꽃에서 추출하는 약이며 지금도 한의학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약입니다.

부자의 주성분은 알칼로이드계의 아코니틴으로, 처음엔 중추신경을 흥분시킨 후 마비시켜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아코니틴은 심장정지, 호흡곤란, 근육마비, 내장출혈 등을 일으킵니다. 이 성분이 들어간 약을 마시면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외적으로 성종이 폐비 윤씨를 사사할 때 이세좌가 비소화합물인 비상을 가져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수은을 넣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비상은 비소를 가공해서 만든 것으로,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독약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조선시대에 사약을 만드는 기관은 내의원이었고, 그 조성은 비밀로 되어 있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비상, 부자, 초오, 천남성 등의 약재를 섞어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는 사람들

사극에서는 사약을 마시면 곧바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독성의 발휘가 다르고 약재다 보니 계절에 따라 약효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점, 유배지에 사약을 가져갈 경우 도중에 변질되는 문제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아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연산군 시대에 처형된 전 영의정 윤필상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일 것을 예감하고 미리 비상을 준비했고, 연산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술에 비상을 타서 마셨습니다. 그런데 독이 변질되어 효과가 없어진 건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죽는 바람에 결국 민가에 들어가 목을 매 숨졌습니다.

성리학의 거두 송시열은 3잔의 사약을 마신 것으로 전해지며, 조정 비난을 죄목으로 사약을 받은 임형수는 사약을 16잔이나 마신 뒤에도 살아있어 결국 목을 매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16잔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사약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온돌방에서 마시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열이 독성을 더 빨리 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약만 가져간 것이 아니다

사약이 내려지더라도 꼭 사약을 먹고 죽어야 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죽고 싶거나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 경우엔 죽는 방법을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부도사 일행은 사약과 함께 목을 맬 수 있는 광목이나 비단을 같이 가지고 갔으며, 만약 본인이 소지하고 있던 칼이나 독이 있으니 그것으로 자결하겠다고 요청한다면 그 또한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형이라기보다는 자결 명령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형벌의 정식 명칭이 사사, 즉 죽음을 명령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죽는 방법이 아니라 임금의 명에 따라 죽는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사약을 받은 역사 속 인물들

조선 역사에서 사약을 받은 인물은 적지 않습니다. 태종 말년 세종의 장인 심온이 왕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았으며, 단종은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도 친가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붕당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약이 내려져 노론의 영수 송시열도 사사되었으며, 장희빈도 사약을 받았습니다. 정조 이후로는 차츰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약을 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왕족, 왕비, 후궁, 대신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일반 백성이 사약을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약은 어디까지나 지체 높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지막 예우였던 것입니다.

사극과 다른 진짜 사사 장면

사대부 아녀자급 이상의 여자를 사사할 땐 사약을 방 안에까지 전달해서 방 안에서 절하고 마셨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금부도사가 억지로 입을 벌려 사약을 붓는 장면은 사실과 다릅니다. 죄인이라도 엄연히 왕의 후궁인데 다른 남자가 후궁의 몸을 만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약이 내려지면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참수나 교수보다는 신체를 온전히 보전한 채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고, 이를 훼손당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습니다.

사약은 조선시대의 독특한 형벌 문화를 보여줍니다. 죽이면서도 예를 갖추고, 형벌이면서도 은전이라 불렀던 이 제도는 유교적 가치관과 신분 사회의 특성이 결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사극에서 사약 장면을 보실 때 이런 역사적 배경을 떠올려보시면 더욱 흥미롭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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